[스크랩] 차(茶)자 소고(小考)
"차(茶)자 소고(小考)"
― 문헌상에서 보이는 차(茶)자의 종류와 그 독음(讀音)을 중심으로―
글쓴이 : 촌안(村顔) 박영환 ( 朴永煥 )
( 현, 중국 사천대학 객좌교수 / 동국대 중어중문학과 강사)
이 논고는 진문회(陳文懷)씨의《차의 품음예술(茶的品飮藝術)》 중에서 보이는 차(茶)자에 관한 내용의 일부를 위주(爲主)로하여 요약·번역하고, 그 번역의 바탕 위에 해석상에 필요한 필자의 의견을 덧붙여 서술하였음을 우선 밝혀 둔다.
고대 중국에서 차(茶)자에 대한 기록들은 여러 고문헌에서 어렵지 않게 많이 보이고 있다. 그 기록들을 종합해 보면 대략 다음과 같은 글자들이 문헌에서 출현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도(荼)”·“타(詫)”·“가(檟)”·“천(荈)”·“설(蔎)”·“명(茗)”·“고로(皐蘆)”·“차(茶)” 등의 여덟 글자가 모두 “차(茶)”자의 의미를 가지는 글자들이다. 이 글자들을 순서에 따라 그 문헌의 출전을 하나 하나 짚어가며 살펴보기로 하겠다.
(1)도(荼)―(音:涂,tú)
이 글자가 맨 먼저 보이는 문헌은 《육경(六經)》―易,詩,書,春秋,禮,樂을 통칭하는 말.―중의 하나인 《시경(詩經)》이며, 《이아(爾雅)》나 《신농본초(神農本草)》,《동약(僮約)》 등에서도 각기 보이는 데 그 내용들을 대략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①《시경》:
“수위도고(誰謂荼苦)”―“누가 씀바귀(차)를 쓰다했나?”,
“채도신저(採荼薪樗)”―“씀바귀(차) 캐고(따고) 개똥나무 베어….”
②《이아(爾雅)》:
“가(檟),고도(苦荼)”―“가(檟)는 쓴 씀바귀(차)이다.”
③《신농본초(神農本草)》
“도생익주,삼월삼일채(荼生益州,三月三日采)”―“도(荼)는 익주(益州)에서 나며, 삼월 삼일에 딴다.”
④《동약(僮約)》
“팽도진구(烹荼盡具)”―“도(차)를 다릴 도구를 깨끗이 씻는다.”(일설에 의하면 “盡”은 “淨”이다.)
“무양매도(武陽買荼)”―“무양(지금의 팽현)에서 도(차)를 사다.”
고대에 “도(荼)”자의 뜻은 매우 여러 가지이므로 반드시 차(茶)를 가리킨다고 할 수는 없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대부분의 《시경(詩經)》 번역서들을 보면 하나같이 “도(荼)”자를 씀바귀 정도로만 번역이 되어있지 그것을 “차(茶)”라고 번역한 책은 극히 보기 드물다.
진(晉)나라 곽박(郭璞:276-324년)이《이아(爾雅)》〈석목(釋木)〉편의 “가(檟),고도(苦荼)”조를 설명한 주석(注釋)을 보면 다음과 같다.
“수소사치자(樹小似梔子), 동생청(冬生靑), 엽가자갱음(葉可煮羹飮). 금호조채자위도(今呼早采者爲荼), 만취자위명(晩取者爲茗), 일명천(一名荈), 촉인명지고도(蜀人名之苦荼).”
“나무는 마치 치자와 같고, 겨울에는 푸르게 나며, 잎은 삶아서 국을 만들어 마실 수가 있다. 지금에 부르기를 일찍 딴 것은 도(荼)라고 하며, 늦게 취한 것은 명(茗)이라 하고, 일명 천(荈)이라 하며, 촉땅의 사람들은 이것을 고도(苦荼)라고 이름한다.”
이것은 “도(荼)”가 바로 “차수(茶樹)”였다는 사실을 최초로 명확하게 지적한 기록이라 하겠다. 아울러, 이것은 최초로 차수(茶樹)의 특징과 특성을 묘술함과 동시에 차의 채적시기의 이르고 늦음에따라 각기 다른 명칭으로 불려지고 있음을 잘 설명해주는 기록이기도 하다.
남북조(南北朝:420년-589년)에 이르러 음차(飮茶) 풍조는 민간에까지 보급되었다. 아울러 많은 뜻을 동시에 가지고 있던 “도(荼)”자는 이미 민간의 음다풍속 속에서 “차(茶)”자의 대체 문자로 제대로 정착되지 못하고 서서히 도태되어 갔으며, 이에따라 “차(茶,chꐁ)”자와 “도(荼,tú)”의 함의(含意)는 점점 구분되기에 이른다. 당(唐)나라 고조(高祖) 때의 국학박사(國學博士) 육덕명(陸德明:618년-626년)이 저술한 《경전석문(經典釋文)》과 《제경독음(諸經讀音)》에서 “도(荼,tú)”자의 독음(讀音)은 이미 “차(茶,chꐁ)”자로 바뀌었다. 그러나 이것도 발음만 바뀐 것이지, 글자가 “도(荼)”자에서 “차(茶)”로 바뀐 것은 아니였다.
(2)타(詫)―(音:du)
이 글자 역시 고대(古代)의 “차(茶)”자 중의 하나이다. 고증에 의하면 “도(荼)”자 보다 그 역사가 더 오래된 것 같다. 서한(西漢)의 사마상여(司馬相如:기원전 179년-118년)가 지은 《범장편(凡將篇)》―약 기원전 130년 전후에 지어짐.―에 “원화(芫華)·패모(貝母)·누로(漏蘆)·천타(荈詫)·창포(菖蒲)” 등의 20여 종의 약물(藥物)이 기재되어 있다. 무릇 《범장편(凡將篇)》이란 후세(後世)의 계몽잡자(啓蒙雜字) 교과서와 비슷한 것이며, 동시에 또 일종의 고자서(古字書)이기도 하다. “타(詫)”자는 차(茶)자의 옛날 정자(正字)이다. 음운학상으로 분석해보면 “타(詫)”자와 “도(荼)”자는 동성자(同聲字)이다.
“타(詫)”의 원래 뜻은 뚜껑과 그릇 받침이 있는 마실거리의 도구(飮具)이다. 그 음(音)은 “도(荼)”와 동음(同音)이다. 이것은 바로 고대의 다기(茶器)를 가리키는 말로써, 아마도 후대의 뚜껑과 차탁(茶托)이 있는 다완(茶碗), 즉 개완찻잔(蓋碗茶杯)에 상당하는 다기(茶器)였을 것이다. ―이 부분에서 진문회(陳文懷)씨는 자신의 저서《차적품음예술(茶的品飮藝術)》에서 또 하나의 고증(考證)으로 《서경(書經)―(音:du》의 〈고명(顧命)〉편에 나오는 “왕삼숙(王三宿), 삼제(三祭), 삼타(三咤)”조를 인용하여 서주(西周)에서 술을 대신하여 차(茶)로 제사를 지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가 당나라 공영달(孔潁達) 소(疏)의 《상서정의(尙書正義)》본을 확인한 결과, 진씨는 우선 “타(咤)”자를 “타(詫)”자로 오용(誤用)하였고, 게다가 원문의 본문과 주석 어디에도 “술(酒)을 대신해서 차(茶)를 제사에 바쳤다는 기록은 나오지 않음을 확인했다. 고로 잘못된 부분을 번역 대상에서 제외하고, 혹시 진씨의 주장을 쫓아 오류를 범하는 이가 있을까 염려되어 여기 사족(蛇足)을 붙여 이를 바로 잡고자 한다.
(3)가(檟)―(古音:古 gǔ, 今音:假 jiꐂ)
이것은 유일한 “목(木)”변의 고대 차자(茶字)이다. 《이아(爾雅)》〈석목(釋木)〉편의 “가(檟),고도(苦荼)”조에 처음으로 보인다. 《광아(廣雅)》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보인다.
“형파간구가도지엽(荊巴間灸檟荼之葉), 가입숙·강·귤자등위명이음지(加入菽·薑·橘子等爲茗而飮之).”
“형파(荊巴)지구에서는 가도의 잎을 구워, 콩잎(콩의 어린잎)·생강·귤껍질 등을 넣어 명(茗:차)을 만들어 그것을 마셨다.”
이 단락은 육우의 《다경(茶經)》에서 인용된 《광아(廣雅)》의 내용에 비해 문장이 간단할 뿐만 아니라 글자의 내용이 약간 다르다. 유소서(劉昭瑞)의《중국고대음차예술(中國古代飮茶藝術)》에서는 현존하는 《광아(廣雅)》와 여러 가지 참고문헌을 들어 육우의 《다경》에서 인용된 《광아》가 오인용(誤引用)된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하고 있다. 단, 진씨는 이 단락에서 《광아》의 진위여부에 대해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진씨가 여기서 인용한 상문의 《광아(廣雅)》의 문장이 바로 현존하는 《광아》의 진본 내용이 맞을 것이다. 어쨌튼 필자는 원저자(陳文懷씨)가 인용한 원문에 충실하기로 한다.―유소서(劉昭瑞)의《중국고대음차예술(中國古代飮茶藝術)》을 참조바람.
육우의《다경(茶經)》에도 이 글자는 보인다. 육우(陸羽)는 《다경(茶經)》에서 말하기를,“기미감(其味甘,가야(檟也).―그 맛이 달으니, 가(檟)이다.”라고 하였다.
가(檟)의 고음(古音)은 “고(古,gǔ)”와 같이 읽는데, 이것은 “고(苦,kǔ)와 도(荼,tú)”의 합음(合音)이다. 이렇게 가(檟)자가 “고·도(苦·荼)” 두 글자를 합음(合音)한 가차자(假借字)에서 말미암았고, 게다가 사람들이 “도(荼)”자만을 주로 많이 사용하였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차사(茶事)에 대한 역사 기록 중에서는 오직 “고도(苦荼)” 두 글자만이 많이 보이고, “가(檟)”자의 사용은 매우 드물게 보이게 되었다.
(4)천(荈)―(音:喘 chuꐂn)
이 글자는 “초(草)” 변으로 오직 차엽(茶葉)만을 가리키는 “고대의 차(茶)”자이다. 이 글자는《범장편(凡將篇)》―본문 (2)타(詫)조 참조.―에서 제일 먼저 보인다. 그 외에도 이 글자는 다음과 같은 문헌 등에서 보인다.
《삼국지(三國志)·오지(吳志)》〈위요전(韋曜傳)〉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요음주불과이승(曜飮酒不過二升), 호초예이(皓初禮異), 밀사도천이대주(密賜荼荈以代酒).”
“…위요(韋曜)는 주량(酒量)이 겨우 두 되밖에 되지 않으므로 손호(孫皓)는 처음부터 요(曜)에게 예를 달리하여 몰래 차(荼荈)를 하사하여 술을 대신케하였다.”라고 기록되어있다.
또, 진(晉)나라《손초가(孫楚歌)》에 보면,“강계도천출파촉(姜桂荼荈出巴蜀)”“생강·계피·차는 파촉(巴蜀)에서 난다. ”라는 기록이 있다. 이상에서 나타난 “도천(荼荈)”은 지금의 “차(茶)”이고, “파촉(巴蜀)”은 현재 사천성 “성도(成都)”와 “중경(重慶)”을 합칭(合稱)하는 말로써 삼국시대 때의 촉나라 영토를 말하는데, 지금의 사천성(四川省) 일대가 된다.
이 글자의 원래 뜻은 정제(精製)되지 않은 “거친 차(粗茶)” 혹은 늦게 딴 차(茶)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아(爾雅)》에 이를 잘 입증하는 기록이 있는 것은 이미 앞에서 서술한 본문 “(1)도(荼)”조에서 언급하였다. 이로 미루어 보아 대체로 동한(東漢) 때부터 시작하여 “천(荈)”이란 글자가 차츰차츰 “명(茗)”이란 글자를 대신하여 “차(茶)”라는 글자의 의미로 쓰이지 않았나 생각된다.
(5)설(蔎)―(音:設shè)
양웅(楊雄)의《방언(方言)》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보인다. “촉서남인위도왈설(蜀西南人謂荼曰蔎
).” 즉,“ 촉땅 서남인들은 도(荼)를 일러 설(蔎)이라고 한다.”라 하였다. 이는 사천성 서남부에서 차(茶)를 칭하는 속어(俗語)임을 입증하는 기록이라 하겠다. 육우의 《다경(茶經)》에서도 “설(蔎)”자를 일러 차의 별명(別名)이라 하지 않았는가.
(6)명(茗)―(音:酩,mǐng)
《신농식경(神農食經)》에 이르기를, “도명구복(荼茗久服), 영인유력열지(令人有力悅志)” 즉,“차를 오래 복용하면 사람으로 하여금 힘있게 하고, 뜻을 기쁘게 한다.”라고 하였다. 또《이아(爾雅)》에도 이 글자의 기록(내용 생략, 上文 참고 바람)이 보이며, 당(唐)《옥편(玉篇)》에 이르기를 “명(茗)은 차아(茶芽)이다.”라고 하였다. 차의 발상지인 사천성(四川省)의 방지(方志)인《화양국지(華陽國誌)》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파촉원유방약(巴蜀園有芳蒻),향명(香茗)…….” “파촉(四川)지방의 뜰에는 향기로운 부들 싹이 있으니, 향명(香茗)이라 ……. ”
이상에서 살펴 본 “명(茗)”자는 비교적 늦게 출현한 글자이다. 그 출현이 “도(荼)”나 “천(荈)”보다 훨씬 늦다. 한(漢)나라 허신(許愼)의《설문(說文)》에 보면 이 글자를 새로 추가로 첨부하였기 때문에 “명(茗)”자의 해석이 없다. 어떤이는 추측하기를 “이 글자가 동한(東漢)시기에 차엽(茶葉)을 표시하는 글자로 쓰이지 않았을까?” 하고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놓는다. 그러나 어원(語源)에 근거하여 보면 “명(茗)”자는 운남성(雲南省) 일대에서 주로 사용 차(茶)자의 토착어(土着語)이다. 태국어의 차(茶)의 독음(讀音)은 아마 이 “명(茗)”자에서 유래된 것이라 생각된다.
(7)고로(皐蘆)
《동군록(桐君錄)》-―성서(成書)년대가 불확실하다. 춘추(春秋)설과 동한(東漢)설이 있다.―에 보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보인다.
“남방유과로목(南方有瓜蘆木), 역사명(亦似茗), 지고삽(至苦澀), 취위설(取爲屑), 자음(煮飮),역통야불면(亦通夜不眠).”
“남방에 과로목이 있는데, 이 또한 명(茗)과 같이 아주 쓰고 떫다. 그것을 가루로 취하여 끓여 마시면, 또한 밤새로록 잠을 잘 수 없다.”
납북조(南北朝) 심회원(沈懷遠)이 쓴 《남월지(南越志)》(557년-589년)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기고 있다.
“용천현유고로(龍川縣有皐蘆), 명과로(名瓜蘆), 엽사명(葉似茗), 토인위지과라(土人謂之過羅),혹왈(或曰) 물라(物羅), 개이어야(皆夷語也).”
“용천현에 ‘고로’가 있어, ‘과로(瓜蘆)’라 이름하는데, 잎사귀는 마치 ‘명(茗)’과 같다. 토착인들은 그것을 일러 ‘과라(過羅)’ 혹은 ‘물라(物羅)’라고 하는데 모두가 오랑캐의 말이다.”
당대(唐代)《본초(本草)》에는 또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기고 있다.
“고로(皐蘆),일명과로(一名瓜蘆), 금남인용지(今南人用之), 명왈고등(名曰苦登), 엽사명(葉似茗).”
“고로는 일명‘과로’라고도 한다. 지금 남방사람들이 그것을 쓰는데,‘고등’이라고 이름하며, 잎사귀가 마치 ‘명(茗)’과 같다.”
고증(考證)에 의하면 “고로(皐蘆)”는 “고도(苦荼)”의 회역음(回譯音) 문자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중국 남방(雲南·四川일대)에서 야생(野生)하는 대엽형의 차나무를 광범위하게 통칭하는 말로써, 가끔씩 차(茶)를 나타내는 말로 사용되기도 했다.
근대의 식물분류학자들은 역사에 나타난 ‘고로(皐蘆)’라 하는 것을 아예 차나무의 유형을 대표하는 일종의 차수의 변종(變種)이라 결론 짓고 “Camellia sinensis var. macrophylla”.이라 명명(命名)하였는데, 이는 곧 “중국대엽변종(中國大葉變種)”이란 뜻이 된다.(1958년 J.R.Sealy가 명명)
(8)차(茶)
“차(茶)”자가 최초로 보이는 것은 당대(唐代) 소공(蘇恭)의 《본초(本草)》에서이다. 당(唐)《본초(本草)》는 당나라 고종(高宗) 영휘(永徽) 년간(650-655년)에 이적(李勣) 등이 편찬한 것인데, 현경(顯慶) 년간(656-660년)에 소공(蘇恭)·무기(無忌) 등이 주석(注釋)을 단 것이다.
소공(蘇恭)이 당(唐)《본초(本草)》를 중수(重修)한 이후, 차사(茶事)에 대한 기술은 모두 “차(茶)”자를 사용하기 시작하였으며 더 이상은 “도(荼)”자로써 “차(茶)”자를 대신하는 일은 없었다.《당운(唐韻)》에 “도자중당(荼自中唐), 역작차(亦作茶).”, 즉 “도(荼)는 중당부터 또한 차(茶)자로 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당나라 문종(文宗:827-840년)과 선종(宣宗:841-859년) 기간동안에는 이제까지 차(茶)자를 대신하여 사용해오던 일체의 모든 별명(別名)을 폐용(廢用)하고, 오직 “차(茶)”자 하나만을 사용하도록 통일하였다.
세계에서 사용되는 차(茶)자의 독음은 거의 모두 중국의 “차(茶)”자나 “차엽(茶葉)”이란 글자에서 그 어음(語音)이 전역(轉譯)된 것들이다. 현재의 중국어는 “보통화(普通話:북경어)”를 대표로하여 국어(國語)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언어가 비교적 통일된 상태이다. 그러나 예부터 중국의 방언(方言)은 매우 복잡하기 이를데 없어 중국 자체에서도 지방이 다르면 마치 서로 외국어 대하듯 할 정도이며, 겨우 문자(文字)에 의해서 의사 소통이 이루어질 정도이다. 게다가 역사상 외국과의 언어교류는 대부분이 항구도시를 중심으로 한 지방의 방언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까닭에 세계 각국에서 사용되고 있는 “차(茶)”자의 독음은 대부분 중국 방언의 영향을 받아 제각기 그 방언의 색채(色彩)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것이다. 즉, 세계 각국에 최초로 전해진 “차(茶)”자의 지방음(地方音)은 제각기 다르기 때문에 세계 각국에서 현재 사용하고 있는 “차(茶)”자의 독음(讀音) 또한 각기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현재 세계 각국에서 사용되고 있는 “차(茶)”자의 어음(語音)은 크게 “민남어계(閩南語系)”와 “광동어계(廣東語系)”로 나누어 볼 수 있다.
① 민남어계(閩南語系)‥중국 복건성(福建省)의 민남어(閩南語)이다. “차(茶)”자를 [té]로 읽는다. 이는 하문어(厦門語)로써 민남어의 대표로 삼은 예이다. 하문은 중국 역사상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대외항구도시이며, 해운업(海運業)이 일찍이 발달한 곳이다.
중국의 비단이 외국으로 전파되면서 “비단길(실크로드) ”가 생겨났듯이, 차엽(茶葉)이 세계로 전파되면서 “차지로(茶之路:차의 길)”이란 것 또한 생겨났다. “차로(茶路)”에는 크게 둘로 나누어 해로(海路)와 육로(陸路)가 있다. 이러한 사실은 “차(茶)”의 독음(讀音)에서 분명하게 구분이 되고 있다. 민남어계는 바로 해로(海路)상에서 주로 전용(專用)되던 독음(讀音)이다. 네덜란드,영국,독일·프랑스, 이탈리아, 서반아,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체코슬라바키아, 헝가리 및 라틴어, 영어(英語) 등이 모두 이 민남어계(閩南語系)에 속하며, 민남어(閩南語)의 독음인 “차(茶):[té]”에서 유래하였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면, 영어의 “Tea”, 프랑스어의 “Thé”, 독일어의 “Tee”, 라틴어의 “Thea” 등등이 그러하다.
② 광동어계(廣東語系)‥광동어에서 “차(茶)”자는 “査,Chá”로 읽는다. “차로(茶路)”중 육로(陸路)의 독음은 광동어계(廣東語系)와 화북어계(華北語系)를 함께 채용하고 있다. 일본, 러시아, 인도, 이란, 터키, 아랍에미레이트, 포르투갈 등이 모두 광동어계에 속하며, 그 독음(讀音)은 모두 “Chá”에서 유래하였다. 예를 들면, 일본의 “チヤ”, 러시아의 “Чaú” 등이 그러하다.
스웨덴의 식물학자인 린네(Carl Von Linne)는 최초로 차나무의 학명(學名)으로 정하였는데, “Thea Sinensis” 라고 하였다. 이 또한 중국차에서 유래한 것으로써, 그 것은 곧 “중국차수(中國茶樹)”라는 뜻이다.
필자는 이 “차(茶)”자의 고찰을 통해 우리나라에서 사용되는 “차(茶)” 발음과 “다(茶)” 발음의 정의를 찾고 싶었다. 학자마다 시원스레 대답을 주지 못하고 있으면서 어떤 때는 “차”자로 발음하고 어떤 때는 “다”자로 발음하니, 차(茶)를 처음 배우는 초심자들에게는 혼란이 가중될 뿐만 아니라, 앞으로 배워야할 많은 차학(茶學) 지식을 앞에 두고 어떻게 공부를 해 나아가야 할 지 이만저만 곤욕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여기서 어떠한 결론도 내리지 않기로 했다. 그 결론의 몫은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두면 될테니까.
필자는 진문회(陳文懷)씨의 《차의 품음예술(茶的品飮藝術)》중에서 “차(茶)자에 관한 연구부분”을 발췌하여 번역함에 있어, 문맥상 자연스럽지 못한 부분에는 필자의 설명을 보충하거나, 불필요한 부분을 삭제한 것도 없지 않다. 그러나 거의 가감(加減)없이 원문 번역에 충실하였다. 차학(茶學)에 관심이 있거나, 차학연구에 몰두하는 많은 다인(茶人)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본 졸고는 부산여대 발행《다담(茶談)》2002년 가을호에 게재되었음)
수락산 자락에서 촌안(村顔)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