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omice
2008. 1. 2. 16:16
장 익(위덕대학교 불교학과 교수)
21세기의 화두는 인간이다. 근대이후 서양에서 시작한 합리적 과학에 근거하는 기술문명의 발달은 인류의 빈곤과 불편을 해소하는 외적인 풍요를 가져왔으며, 임상적인 인간의 육체와 심리의 탐구는 인간이해의 폭을 넓혔다. 이러한 추세와 함께 새로운 세기에는 더욱 인간의 육체와 심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인간에 대한 이 두 가지의 연구는 평행선을 달릴 뿐 종합적인 인간 해석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인간상호간과,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미답의 분야로 남아있는 실정에서 이러한 분야는 더욱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와 함께 철저히 인간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이를 인간의 입장에서 해결하려는 불교의 본래면목에 대한 중요성도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불교에서 가르치는 인간이 도달되어야 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성불의 단계이며, 이것은 일상적인 자아의 경험을 벗어난 종교적인 이상형으로의 합일이라는 신비적인 초월성을 지닌다. 이런 점에서 서구에서는 신비주의에 입각한 동양의 사상과 종교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선불교와 밀교에 대한 연구와 수행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계기는 과학적인 탐구의 대상으로서의 인간뿐만 아니라 보다 포괄적인 인간존재에 대한 인식에서부터 출발하였다. 이런 점에서 인간이해에 있어서도 분석적이고 객관적인 과정보다 신비적인 체험에 의한 직관적인 이해를 중시하는 밀교는 새로운 분야로 각광받고 있다.
밀교란 ?
밀교는 비밀불교를 뜻하는 말로 '불교 속의 비밀한 가르침'을 의미한다. 따라서 넓은 의미에서는 불교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으며, 비밀하다는 점에서는 불교 내에서 밀교만의 독자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 비밀한 가르침이란 일반적으로 쉽게 나타나지 않는 사실에 대한 것이며, 이것은 객관적 현실로 설명할 수 없는 내재된 진실면목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의도적인 소수의 사람들에 의한 자의적인 폐쇄는 아니다. 왜냐하면 비밀의 세계 자체는 현실세계와 항상 함께 하고 모든 사람에게 열려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세계를 표현하는 것으로 밀교는 객관적인 이성이나 인식보다 초월적인 경지에서 상징적이고 신비적인 방법을 중시한다. 이런 점에서 밀교는 기존의 불교가 지향해 온 방향과는 다른 면모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밀교의 성립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연유하며 초기불교, 부파불교, 대승불교 등을 거치면서 다양한 교학과 수행법 등이 정리되는 과정과 관계가 있다. 그러므로 밀교에서는 이러한 비밀의 세계를 체험하기 위하여 일반적인 수행방법과 함께 다양한 신비적인 종교체험을 중시한다. 그리고 이러한 비밀의 세계를 설명하는 방법으로는 일반적인 논리구조나 이성체험으로는 불가능하기에 상징적이고 은유적인 표현을 주로 사용한다.
이런 점에서 밀교의 특성은 비밀스럽고 신비한 내면세계를 상징적으로 서술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인간관에 있어서도 밀교는 기존의 초기불교 이후의 다양한 인간관을 수렴하면서 밀교의 특성에 의한 독자적인 해석을 하고 있다.
밀교의 인간관
1) 개별적인 인간관
초기불교에서의 인간에 대한 이해는 현실의 고통 속에서 속박 받고 있는 존재이면서 그러한 고통으로부터의 해탈을 목표로 하는 것으로서의 실존적인 인간이 중심이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자아와 이를 둘러 싼 일체와의 관계를 설명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대승불교시대가 되면 그 주된 방향이 인간의 내면적인 심성으로 전환되면서 인간은 성불이 가능한 존재이면서 때로는 단계적인 성불이 확정된 것으로 설해지기도 하고, 내면적으로는 성불의 능력을 이미 구비한 것으로 표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밀교에서의 인간이해의 시작은 인간의 실존적이고 외면적인 모습에 가리워 나타나지 않는 인간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본질적인 부분에 대한 해석이다. 겉으로 나타나는 조화롭지 못한 현실 속에서의 인간의 다양한 모습은 중생의 입장에서는 선과 악의 상대적인 한계에 국한된 세계이지만 부처님의 입장에서는 부처님의 세계 그대로 인 것이다.
이러한 세계가 중생에게는 개방되지 않는 비밀의 세계이며 신비로울 뿐이다. 현실에서의 중생의 인간 됨은 다만 중생이라는 한계 속에서 그렇게 인식 될 뿐이다. 그러므로 밀교에서의 인간이해는 중생들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부처님의 입장이라는 출발점에서부터 시작한다.
부처님의 입장에서는 중생은 곧 그대로가 이미 성불한 존재이기에 밀교에서는 즉신성불(卽身成佛)을 본질적인 이상으로 하고 있다. 왜냐하면 중생은 만물의 근원인 육대의 조화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에서는 일체의 근원과 함께 하는 부처님과 조금도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향은 기존의 불교와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초기불교에서는 불가능했던 성불이 대승불교가 되면서 개방되기 시작하였지만 이상적인 종교목표로 설정되었을 뿐 오히려 보살이라는 구체적인 새로운 대상이 성립되면서 성불은 더욱 멀어지게 된 것과는 다른 설명이다.
또한 밀교에서는 중생의 행위를 삼밀(三密)이라 한다. 초기불교에서부터 중생의 행위는 업(業)이라 불러 왔다. 업이란 행위를 뜻하는 용어로 특별히 악행만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해탈하지 못한 중생의 과보와 관련하여 이해될 때에는 대부분 유루(有漏)의 행위로 받아 들여 진다.
그러나 밀교에서는 중생의 행위에 해당하는 신(身), 구(口), 의(意)의 삼업(三業)도 겉으로는 유루의 행위가 될 지 모르지만 그 삼업의 내면에는 우주의 법계진리가 내재되어 있는 비밀스러운 것으로 그것 자체가 부처님의 활동과 다름이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
이런 점에서 밀교에서는 업(業)이라는 용어보다 비밀스럽게 부처님의 진실세계가 내재되어 있다는 뜻에서 밀(密)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삼밀이라 한다. 이것은 중생의 본질적인 모습에 대한 관념적인 이해가 아니라 중생의 실존적인 활동 자체에 대한 신비적이고 상징적인 이해이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밀교에서는 인간의 모든 욕망과 선행 등의 일체 행위를 있는 그대로 긍정하게 되고 이것은 근원적으로는 그대로 부처님의 행위와 다를 바가 없다고 한다. 그러므로 밀교의 수행법은 중생의 삼밀행을 바탕으로 여래의 삼밀과 상응해 가는 것이며 궁극적으로 일치하는 신비한 종교체험으로 비밀한 부처님의 세계를 내증하게 된다.
또한 중생의 심성에 있어서도 대일경 주심품에서는 160심으로 분류하고 이러한 자신의 심성을 여실하게 아는 것<如實知自心>이야말로 일체의 지혜를 얻는 것이라고 설함으로써 중생의 심성 그대로가 본질적으로 부처님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표현함으로서 무한한 중생에 대한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견해는 대승불교의 심성설이나 여래장설, 불성설 등에서도 찾아 볼 수 있지만 이분법적인 중생심과 여래심의 구분을 전제로 한 것이며, 중생심의 여래심에로 변화를 통하여 가능한 구조로 해석되고 있다. 그러나 밀교에서는 중생심 자체가 여래심과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는 점을 신비적인 방법으로 설명하고 있다.
2) 종합적인 인간관
밀교에서는 이러한 개별적인 인간이해를 바탕으로 일체와의 관계를 중시한다. 인간에 대한 이해는 개별적인 인간 자체인 자아와 이를 둘러 싼 일체와의 관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 모두는 자기 스스로는 개별적인 자아이지만 일체와의 관계 속에 포함되며, 이 둘은 상호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는 인간자체에 대한 개별적인 분석과 함께 인간과 일체의 보편적인 관계를 설명함으로써 가능하다.
이러한 관계를 밀교에서는 만다라(ma ada)로 설명한다. 만다라는 원만구족하고 원융한 조화의 진실세계를 말하는 것으로 개별적인 존재들의 상호관계를 의미한다. 본질적인 경지에서는 일체가 육대로 이루어진 근원적인 동질성을 지니며, 무량한 개체의 무수한 활동이 원만하게 조화를 이루고 유지되고 있는 상태를 신비적인 직관의 모습으로 바라 본 것이다.
이런 입장에서는 일체와 부처님과 중생이 서로 다르지 않으므로 무수한 부처님과 보살님을 비롯한 제천 등의 상징적인 방법으로 표현하게 된다. 밀교에서는 이것이 곧 우주의 근원적인 질서이며 본질적인 모습임을 밝힌다. 이것은 만유의 보편성과 개별성이 하나의 조화 속에서 통섭되는 것이며 만유의 개별적인 가치가 전체적인 것으로 확대되어 신앙적인 불보살로 구상화되면서 구체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때로는 연꽃과 법륜, 월륜 등과 같은 즉물(卽物)로 표현함으로서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일체와 인간의 근원적인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개별적인 자아가 소우주라면 전체적인 일체는 대우주에 상징되기도 한다.
이것은 비약이 아니라 비밀한 세계의 본연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나타낸 것이며, 이러한 세계에 대한 무한한 긍정적인 해석이야말로 인간의 근원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일체와 조화로운 생명의 근원에 대한 신념을 지니게 한다.
이러한 신념은 오늘날 인간개인의 소외, 인간 집단간의 갈등, 자연지배로 인한 인간과 자연의 부조화, 물질과 인간정신의 혼란 등의 현대사회의 구체적인 인간 삶의 현실 문제에 많은 부분을 시사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문제의 원인은 인간의 부분적이고 외면적인 객관논리에 치중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에 비하여 밀교의 인간관은 종합적인 인간본질의 내면 모습을 간파하고 개인의 본질적인 부분에 입각한 전인격적인 무한한 긍정을 통하여 일체와의 동질성을 회복하는 상호존중과 의존의 조화로운 관계를 설한다.
그리고 이러한 밀교의 인간관은 앞으로 새로운 세기의 인간과 일체에 대한 이해의 장을 열어 가는 중심원리로서 불교가 지닌 이 시대의 역할을 기대할 수 있는 분야가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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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문헌
- 월간『불광』 2000년 9월호 |
출처 : 박근형의 티베트 사천 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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