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당번고도를 가다](2)눈물바다 일월산(日月山)을 넘어
다정 김규현( 티베트문화연구소장)
- 아, 슈에엔 소저(雪雁 小姐)!
티베트로 시집 간 문성공주는 당 태종의 친딸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그녀는 진짜 공주가 아니고 설안이라는 이름을 가진 당 태종의 4촌 동생인 강하왕(江夏王) 이도종(李道宗)의 딸이었다. 당 태종은 친딸이 무려 21명이나 되었지만, 태종은 사촌조카 설안소저를 양녀로 삼아 이역만리로 보낸 것이다.
이도종이란 인물은 우리에게도 낯선 이름이 아니다. 바로 고구려전투에 참전하여 요동성을 함락시키고 그 유명한 안시성 전투에서 토성작전을 지휘했던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요즘 방영되고 있는 어떤 고구려관련 연속극에서는 이도종이 사로잡혀 참수를 당하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당서(唐書)에 의하면, 그는 비록 참패는 하였지만 귀국하여 뒤에 중신간의 반역사건에 연루되어 모함을 받아 죽었다고 기록되어있다.
각설하고, 당 정관 15년(641년) 당시 17살이었던 `눈 기러기’라는 이름의 슈에엔 소저는 문성공주라는 이름으로 변해 장안성을 떠나 토번으로 떠난다. 당시 이도종은 오늘날의 문공부 장관격인 예부상서(禮部尙書)라는 직책에 있었는데, 당 태종은 문성공주를 토번까지 보낼 후행(後行)으로 친부이며 조정의 중신인 이도종을 지명하여 많은 혼수품과 함께 25명의 시녀와 악사, 기술자들 그리고 불상(銅佛像)까지 함께 보냈다. 비록 친딸은 아니지만 모양새는 국혼(國婚)인 셈이었다.
- 난저우(蘭州), 시닝(西寧)을 지나며
문성공주 일행은 몇 달의 여행 끝에 서역으로의 갈림길인 난저우를 지나 시닝의 청해호반에 도달하여 며칠을 쉬고는 본격적으로 토번으로 향한다. 지난 회에 이야기한바 있지만, 청해호반 근처에는 7세기부터 벌어진 당과 토번의 격전지가 많다.
그 중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키는 주역들인 설인귀, 이경현, 소정방 등이 참패한 대비천, 승풍령, 양비천 같은 전쟁터가 많아 감회가 새롭지만, 특히 이곳은 백제 유민장수인 흑치상지(黑齒常之)와 연관이 깊은 곳이어서 더욱 그러하다. 백제가 멸망하자 부흥운동을 하던 흑치상지는 결국 당나라에 귀화하여 하급장교로 싸움에 참전하게 되는데, 그가 처음 투입된 곳은, 문성공주가 지나간 뒤 30여년이 지난 뒤, 678년 벌어진 승풍령(承風嶺)전투였다.
설인귀(薛仁貴)의 참패로 위기를 느낀 당나라는 명재상 이경현(李敬玄)이 직접 18만 대군을 이끌고 토번을 섬멸하려고 청해호반으로 밀려온다. 그러나 천하무적의 첸릉장군이 이끄는 토번군은 승풍령으로 유인하여 오히려 대파하고 골짜기로 몰아놓고는 포위망을 좁혀왔다. 이런 상황에서 당의 쟁쟁한 장군들이 우왕좌왕하기 급급했는데, 오직 흑지상지만이 야밤에 5백 명의 결사대를 이끌고 포위망을 뚫어 사령관을 구해내어 질서정연하게 후퇴하였다고 한다.
또한 2년 뒤 벌어진 양비천전투에서도 야습작전으로 큰 공을 세워 흑지상지는 하원군경략대사(河源郡 經略大使), 즉 청해호 일대의 사령관으로 부임하여 지금의 시닝(西寧)에 주둔하게 된다. 그는 이후에도 남경에서 일어난 반란을 평정하고 687년에는 연연도 대총관이 되어 돌궐군과 싸워 이겨 큰 공을 세웠으나, 그러나 9년 뒤인 689년에, 역시 고선지와 같은 신세가 되어, 반역죄로 모함을 받아 개죽음을 당하였다. 뭐, 원래 사냥이 끝난 뒤 사냥개는 쓸모가 없는 것이니까.
1986년에 발견된 비문에 의하면, 늦게나마 아들의 노력으로 사면되어 연국공(燕國公) 우무위위대장군(右武威衛大將軍)으로 추증되어 당시의 국립묘지격인 낙양(洛陽) 북망산(北邙山)에 부자가 나란히 묻혔다고 한다.
- 일월산을 넘어
다시 발길을 재촉한 문성공주는 당시 당과 토번의 경계선이었던 일월산(해발3,520m)에 올라 장안 쪽을 바라보고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며 통곡을 했다고 한다.
현재 일원산 근처에는 문성공주와 관련된 유적이 많다. 원래 산이 붉은 색을 띤다고 하여 적령(赤嶺)이라고 불렸지만, 문성공주가 고향과 부모를 잊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거울(日月寶鏡)을 고개에다 던져 깨버렸다는 일화로 이름이 바뀌었다. 티베트어로 ‘니마다와라(日月고개)’의 유래이다.
또한 일월산을 떠나 서쪽으로 가다보면 한 냇물을 만날 수 있는데, 바로 그 이름이 도창하(倒?河)이다. 냇물이 공주가 하도 섧게 울었기에 냇물이 거꾸로 흘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하니 나그네로 하여금 처연함을 느끼게 한다.
[강원일보 2006-12-08 0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