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중국, 전제주의 패권국가 꿈꾸나
과거 제국주의 열강 거론 중화민족 부흥 욕망 |
CCTV, ‘강대국으로 일어서다' 방영 |
역사를 참고하는 중국인들, 그들은 지금 한 나라가 강대국이 되는 과정을 살피고 있다. 그것도 자신들이 제국주의국가로 욕하던 그 나라들을 말이다.
중국 CCTV 사이트 ‘강대국으로 일어서다(大國崛起)’ 메인화면.
중국 중앙방송국(中央電視臺; CCTV) 제2채널(경제채널)은 11월 13일부터 24일까지 저녁 7시 황금시간대 매일 50분 동안 자체 제작한 12부작 다큐멘터리 ‘강대국으로 일어서다(大國崛起)’를 방송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11월 27일부터 12월 9일까지 재방송하기에 이르렀다. 이미 시중에 나온 DVD도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고 있고, 8권으로 나온 총서 1만 질도 이미 다 팔렸다.
주요 내용은 이렇다. 포르투갈·스페인·네덜란드·영국·프랑스·독일·일본·소련·미국은 어떤 과정을 거쳐 세계 강대국으로 올라섰으며, 우리 중국인은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는가. 이 나라들은 제도를 개혁해 법치국가를 완성했고, 자본주의와 권력안정을 추진했으며, 국민소질을 끌어 올려 전체적인 소프트 파워(軟實力)를 향상시켰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보면 당연한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 나라들은 중국공산당이 대륙에서 정권을 잡은 이래 중국 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줄곧 무산계급 피를 빨아 먹는 제국주의 국가로 비판했었던 사례다. 언론이 통제 받는 이 나라에서, 그것도 중국 대표 방송국이 3년간 심혈을 기울여 이런 다큐멘터리를 만들었고, 중국인들이 이에 크게 호응하고 있다. 중국 포탈사이트 ‘시나(SINA)’에 있는 두 네티즌 의견을 살펴보자.
“이 다큐멘터리가 정작 하고 싶으면서도 하지 않은 말이 무엇인가? 분명하다. 10개 나라를 논하지 않고 9개 나라를 논했다. 하나가 부족하다. 그것은 미래의 중국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바로 이것을 말하고 싶어 했다.”
“이 작품은 큰 의미를 담고 있으며, 중국 관방매체가 인민에게 보내는 사전 신호다. 이제 마르크스레닌주의 역사관에서 벗어나 세계열강의 발전과정을 냉정하게 볼 것을 요구한다. 즉 중국정부가 중국인민에게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것이다. 아마 정치체제 개혁이나 헌법 수정이 있을 것 같다.”
중국 포탈사이트 시나(SINA) ‘강대국으로 일어서다(大國崛起)’ 소개화면.
물론 긍정 호응만 있는 것은 아니다. 모택동 주석을 열렬히 사랑하는 북경 동지 1백인이 만든 사이트 ‘모택동깃발네트워크(毛澤東旗織網)’에 있는 글 두 편을 보자.
“이 프로그램 만든 사람은 미국식 사고방식에 젖어 있는 놈이다. 저들은 미국식 침략과 식민주의를 배우자고 주장한다. 지금 중국에 이럴 힘이 있는가? ‘모택동사상’만이 우리나라를 부유하고 강하게 만들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이 무슨 칭찬할 가치가 있나? 그 때 독일과 일본의 국민교육이라는 게 대체 뭔가? 군국주의와 인종주의 아냐? 이 프로그램 만든 사람들은 자기들 사고방식으로 역사를 재단했어. 이건 비과학적인 태도야.”
그러나 이 교조적인 좌파들의 의견은 소수라고 볼 수 있다. 이미 보통 중국인 일상생활과 의식에서 공산주의는 찾기 힘들고, 이 다큐멘터리는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그리고 현 중국정부가 교조적인 좌파들의 정권이 아니라는 것을 이 다큐멘터리 제작책임자 임학안(任學安)이 총서 후기에 쓴 이 다큐멘터리를 만든 동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03년 11월말 어느 새벽, 나는 출근하다 라디오 뉴스를 들었다. 중공 중앙정치국이 ‘15세기 이래 세계 주요 국가의 발전역사’를 집단 학습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때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나는 온 몸이 떨렸다.”
이 집단학습은 2002년 12월 26일부터 2006년 10월 23일까지 총 35회, 매 번 40일에 걸쳐 진행하고 있다. 주요 내용은 경제 세계화, 국내 사회문제, 국가 발전전략, 법치국가 건설, 중공 통치능력 제고 등등. 2003년 11월 24일 제9차 전체학습이 15세기 이래 세계 주요 국가가 후진국에서 어떻게 강대국으로 올라섰는지 고찰하는 내용이었다. 이 날 중국 국가주석 호금도(胡錦濤)가 참석, 이렇게 말했다.
“중국은 후기발전국가이며 대국입니다. 세계 주요국가 현대화 과정과 경험을 배우는 것은 국가전략을 세우고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는데 유익할 것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중국에서 광범위한 호평을 받았다. ‘위대한 미래 중국을 꿈꾸며 감성과 이성으로 만든 다큐멘터리’가 일반적인 평가다. 그럼에도 광주(廣州) 중산(中山)대학 철학과 원위시(袁偉時) 교수의 비평은 냉철하다.
“이것은 문제작이다. 분명 중국인의 시야를 넓혀주는 데 도움을 줬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사안은 거론하지 않고 넘어가 버렸다. 예를 들어 소련을 설명할 때 그냥 찬양 일색이었다. 소련 독재체제와 개인자유 박탈에 대한 언급이 없었고, 권력이 개인에게 집중될 때 얼마나 위험한가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일본이 서양에서 열심히 배웠다는 것을 설명하면서 왜 일본 정치체제는 현대화로 나아가지 못하고 군국주의로 나갔는지 분석도 없었다. 마지막 제12부가 결론인데, 강대국이 되는 요소를 설명하면서 민주제도·사유재산 보호·개인자유 보장, 이런 언급이 없었다. 이 다큐멘터리가 일부러 회피한 것이다.”
우리는 중국이 전제주의 패권국가를 꿈꾸고 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강대국으로 일어서다(大國崛起)’ 주요내용
제1부 해양시대(海洋時代): 포르투갈·스페인
포르투갈 엔리케 왕자와 에스파냐 이사벨라 여왕은 대항해 식민계획을 주도한다. 포르투갈은 브라질과 마카오를, 에스파냐는 중남미와 필리핀을 차지한다. 그러나 두 나라는 식민 약탈만 관심 있었을 뿐, 상공업 발전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않았고, 결국 기울기 시작한다.
제2부 작은 나라 큰 업적(小國大業): 네덜란드
네덜란드 상인조합은 도시자치를 실시하고, 세계 최초로 주식거래소와 은행을 창립한다. 이 상업제국의 자본주의 정신은 전 세계로 퍼져나갔으며, 오늘날까지도 이들이 만든 갖가지 상업 규칙이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제3부 현대를 향해(走向現代): 영국
영국은 1215년 마그나카르타(대헌장)부터 귀족이 군주권력을 제한하기 시작한다. 이것이 관용과 개방적인 환경을 만들었다. 1588년 에스파냐를 이기고 1688년 명예혁명을 성공하기까지, 영국은 내부개혁과 외부확장을 꾸준히 추진한다.
제4부 산업혁명(工業先聲): 영국
영국은 식민지 무역을 확장하면서 상품 수요가 증가하고, 과학기술이 발달하며, 특허제도까지 완비, 이 힘들이 쌓인 끝에 산업혁명을 이루었고, 영국은 세계 최초 자유방임 산업국가로 도약한다. 그러나 수많은 식민지는 이 제국의 멍에였다.
제5부 격정의 세월(激情歲月): 프랑스
볼테르 등 계몽운동가의 사상이 프랑스대혁명과 ‘인권선언’이라는 열매를 맺는다. 나폴레옹은 유럽 전역 봉건제도를 쓸어버리며 자유·평등·박애를 심었고, ‘나폴레옹법전’을 반포했다. 2차대전 이후 드골은 그의 독립사상으로 프랑스를 새 대국으로 이끌었다.
제6부 제국춘추(帝國春秋): 독일
철혈재상 비스마르크는 독재 방식으로 공업발전·군비확충·의무교육 보급을 실시, 프로이센을 강대국으로 발전시킨다. 프로이센의 보불전쟁 승리는 이미 ‘초등학교에서 결정된 것이었다’. 독일은 과학과 공업이 급속도로 발전, 영국을 이어 과학기술 발전을 주도한다.
제7부 백년유신(百年維新): 일본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은 일본 근대화의 초석이다. 오쿠보 도시미치(大久保利通)는 목숨을 걸고 폐번치현(廢蕃置縣)·의무교육·자본주의를 추진했고,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대일본제국헌법’ 초안을 마련, 근대 일본 체제를 공고히 했다. 그는 군국주의 노선도 실행한다.
제8부 강대국을 꿈꾸며(寻道圖强): 러시아
표트르 대제는 지방 영주의 온갖 저항을 무릅쓰고 개혁을 추진했으며, 예카테리나 2세는 유럽 계몽사상을 받아들였다. 이 사람은 국민교육을 중시했고, 부동항을 찾기 위해 동유럽·중앙아시아·시베리아 영토확장에 힘을 기울인다.
제9부 혁명과 새로운 노선(風雲新途): 소련
러시아 공산주의 혁명 성공 이후 레닌은 NEP(신경제정책)를 추진, 소련 경제를 회복시켰고, 스탈린은 강압적인 수단으로 국가 산업정책을 추진, 세계 제2 중공업국가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 안에 수많은 모순이 숨어 있었으며, 이는 체제 분열로 결론 났다.
제10부 새 나라 새 꿈(新國新夢): 미국
미국제헌의회는 미국헌법을 완성, 경제발전 보장책을 마련했다. 링컨은 오랫동안 해결하지 못했던 노예문제를 전쟁으로 극복했고, 국가를 다시 통일시켰으며, 특허제도는 과학기술 발전을 유발, 자유시장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하기에 이른다.
제11부 위기와 극복(危局新政): 미국
자유경제는 각종 재난을 일으켰다. 그리하여 여러 진보적인 운동이 반독점법을 추진하게 만들었고, 각종 발명과 컨베이어 시스템 창립,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은 미국경제를 급속도로 발전시켜 세계 제1 강국으로 만들었다.
제12부 큰 길을 향하는 생각들(大道行思): 결론
강대국이 된 원인은 학자마다 의견이 다르다. 그러나 모두 사상·문화 영향력을 중시한다. 체제 개혁도 중요하다. 진정한 세계 제패국은 세 나라 네덜란드·영국·미국이다. 이제 전쟁만으로 강대국이 될 수는 없다. 영원한 평화와 공동번영, 이것은 인류가 같이 가야 하는 목표다. /박근형 기자
박근형 기자 sooksook28@naver.com
시민의신문 2006년 12월 18일 제680호 제12면
<참고문헌>
亞洲週刊 2006년 12월 10일 68쪽~7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