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삼협댐에 빠져버린 중국의 ‘혼’
삼협(三峽)의 담수호 변화
삼혐댐 공사로 수몰위기에 몰린 각종 문화재를 발굴조사하기 위해 학자와 공무원들이 유물발굴 작업을 벌이고 있다.
내 벗이 삼협에서 돌아와 말했다.
“댐이 물을 가두기 전에 다시 한 번 삼협을 보고 싶어서 갔어.”
많은 사람들이 ‘삼협 작별여행’을 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런 감정이 없다. 댐을 완공해도 삼협은 여전히 장관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낭떠러지와 봉우리 높이 변화는 크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댐이 물을 가둔 뒤 삼협 높이 변화가 크지 않더라도 그 의미는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삼협이라는 개념은 양쪽 기암절벽과 산봉우리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사람들 의식 속에 삼협의 영혼은 흐르는 강물에 있다. 협곡은 물길이 만든 작품이다. 흐르는 물이 깎아 만든 것이다. 이 두 개가 조화를 이룬다. 같이 있으면 아름답고, 흩어지면 상처를 입는다. 댐이 물을 가둔 뒤 물이 흐르는 삼협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삼협은 거대한 인공호수로 변할 것이다.
흐르는 물과 호수는 완전히 다르다. 직관상, 강은 흐르는 것이요, 호수는 고요한 것이다. 강은 한 곳을 향하나, 호수는 어느 곳도 향하지 않는다. 강의 유동성은 사람의 시간의식을 일깨운다. 공자는 강변에 와서야 이렇게 감탄했다. “나처럼 흘러가니 밤낮을 쉬지 않는구나!”
강의 방향성과 다시 돌아오지 않음은 사람의 위기의식과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강은 호수와 다르다. 강은 젊다. 창조적이고 진취적이며 성장한다. 하지만 호수는 노쇠함을 뜻한다. 강물은 땅을 끝없이 깎아 각양각색 용모를 빚어낸다. 모래와 진흙을 날라 삼각주와 평원을 조성한다. 하지만 호수 물결은 진흙을 쌓이게 해 흙탕물을 이룬다. 강물의 개성은 끝없이 인류가 깨우칠 것을 일러주어, 인류 정신에 엄청난 영향을 준다. 이것이 인류 문명 발상지가 호수가 아닌 강을 끼고 탄생한 까닭일 것이다.
바위, 나무, 강이 어우려져 최고 경치중 하나로 꼽히는 삼국지의 장비 사당(운양현 수마)이 물에 잠길 위기에 처하자 중국정부가 운양현 영석진으로 옮길 예정이다.
삼협이 인공호수로 바뀌면 호수 안에 있는 협곡은 사람에게 다른 감정으로 우뚝 선다. 그것은 강물의 역동미와 속도미를 잃어버릴 것이고, 사람을 깨우치지도 단련시키지도 않을 것이다. 다시는 ‘양 끝 낭떠러지 원숭이 울어대나, 나룻배 첩첩산중 이미 지났네’라는 체험을 할 수도 없다.
황하와 장강은 화하문명(華夏文明)의 요람이다. 황하가 중국인의 정치, 도덕, 경제 등 의식을 분만했다면, 장강은 중국인에게 아름다움이라는 관념을 제공했고 심미의식을 빚어내는데 엄청난 이바지를 했다. 장강에서도 어느 곳이 가장 크게 이바지했는가? 의심할 바 없이 삼협이다. 아름다움이 모여 있어 중국인에게 끼친 강렬한 영향으로 따지면, 삼협은 독고지존이다. 이런 까닭으로 어떤 사람이 말하길, “중국에서 가장 가치 있는 곳을 꼽으라면 단연코 삼협이로다”.
나는 ‘당시삼백수(唐詩三百首)’에서 통계를 내보았다. 이 책에서 장강을 노래한 시가 54수다. 1/6에 달한다. 그 중에서도 삼협을 노래한 시는 12수다. 1/30이다. 크디 큰 중국에서 노래 3백수 중 12수가 삼협을 노래했으니, 삼협이 중국인 미학세계에서 차지하는 지위를 가히 알 수 있다.
삼협은 운이 있었다. 창공에 휘몰아치는 물결과 험준한 협곡, 드높고 빽빽한 2백㎞, 천부적인 영감을 지닌 시인들이 모여 삼협에게 노래를 선사했다. 서릉협(西陵峽)의 자귀는 중국 초사(楚辭)의 대시인 굴원(屈原)을 탄생시켰다. 무협(巫峽)의 고당(高唐)은 굴원의 뒤를 잇는 송옥(宋玉)이 쓴 고당부(高唐賦)와 신녀부(神女賦)에 그 이름이 있다. 이 두 부(賦)는 한나라 부(賦)의 첫 물결을 열었고, 여성미 가득한 명문의 기원이다. 가장 깜짝 놀랄 것은 구당협(瞿塘峽)의 관문, 바로 규문이다. 이 작은 곳에 수많은 유명한 시인들이 모여 창작한 시의 높은 작품성은 경탄할 만한 것이다.
시선(詩仙) 이백(李白)은 삼협을 3번 거쳐 인구에 회자되는 시들을 남겼다. 특히 규주에서 삼협을 거치며 쓴 조발백제성(早發白帝城)이 가장 유명하다. 시로 말하면, 더 운 좋았던 곳이 규주다.
시성(詩聖) 두보(杜甫)는 규주에서 2년 이상 머물며 4백수 이상 남겼다. 그의 작품 중 2/7를 차지한다. 그가 규주에서 머물지 않았다면 중국인은 ‘처량한 낙목(落木) 가이없이 흘러가나 휘몰아치는 장강 끝이 없도다’라는 신필(神筆)을 잃어버렸을 것이다. 더 재미있는 것은 821년 시호(詩豪) 유우석(劉禹錫)이 규주자사 였다는 사실이다. 그가 쓴 죽지사(竹枝詞) 9수 등 삼협을 묘사한 시들은 천고에 걸쳐 널리 퍼졌다.
삼협은 하느님이 심혈을 기울인 역작인가 생각한다. 그는 결국 중국인이 아름다움에 대한 깨달음이 더 커지도록 보살펴주어야 했다. 무수한 중국 대시인들이 이에 맞섰다. 이미 언급한 시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훗날 나온 시인 백거이(白居易), 이상은(李商隱), 이하(李賀), 소식(蘇軾), 황정견(黃庭堅), 범성대(范成大)… 현대에 이르러 진의(陳毅), 곽말약(郭末若)도 모두 당(唐)나라 시인들처럼 ‘무산(巫山)을 지날 땐 시 한 편을’을 알았다.
무수한 시인이 삼협을 거쳤고, 시 수천편을 남겼으며, 중국인은 그 시들을 읊으며 자랐고, 우리의 미학의식과 아름다움에 대한 범주가 이 시들을 암송하며 커갔다. 이것이 바로 삼협의 공헌이다. 그렇다면 미학의식 뿐일까? 천만에, 삼협은 우리에게 생명의식을 일깨워주었고, 인생가치를 사색하는 영감의 근원이었다.
삼협의 담수호 변화. 이것은 중국인 정신세계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댐이 물을 가두어도 봉우리는 낮아지지 않는다. 그러나 중국인은 슬기를 섭취하고, 영감을 높이며, 인생을 깨닫고, 의지를 연마하며, 심미의식을 단련하는 높은 정신을 잃어버렸다.
나는 믿는다. 삼협댐이 물을 가두어 생기는 수면 상승과 섬 반도 1백여곳(여행지구계획에 따르면 사슴섬, 뱀섬, 디즈니섬, 미라주섬 등등)의 출현은 삼협을 한가한 수상오락공원으로 만들 것이다.
다행일까? 아니면 불행일까?<끝>
글: 단지장(單之薔) 중국국가지리(Chinese National Geography) 편집국장
번역: 박근형(朴根亨) 중국통신원
시민의신문 2003년 12월 1일 제521호 제1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