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일범(진각대학교 교수)
밀교라는 개념의 재정립
밀교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나라는 한국이나 일본에 불과하며 그외의 지역에서는 우리가 쓰는 밀교라는 개념과는 다른 용어들을 쓰고 있다. 그것은 밀교를 대승불교에서 나타난 일시적인 현상으로 보느냐, 아니면 대승불교와는 다른 별개의 사상체계로 간주하느냐에 따라 그차이가 있다. 이 점 각국의 학계에서도 용어에 대한 확실한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밀교에 대한 확실한 개념이 확립되지도 않은 현단계에서 밀교라는 용어가 거부감 없이 사용되고 있으며 그 용어만 보아도 내용을 바로 알듯한 느낌을 준다. 그것은 서양이나 일본의 개설서들이 독자들에게 준 영향이 컸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재로 서양의 개설서들은 대승불교의 최후기에 발생한 무상요가탄트라를 중심으로 내용을 구성하고 있으며 일본의 저작물들은 서기 7,8세기경에 성립된 행탄트라, 요가탄트라를 중심으로 일본내에서 정립한 교리체계를 다루고 있다. 만약 우리들이 분별없이 이와같은 내용을 그대로 받아 들인다면 단편적인 지식만이 우리의 사고체계를 지배하게 되어 결과적으로는 타락한 형태의 불교나 일본적인 내용만을 가지고 밀교를 논하게 될 것이다. 또한 밀교라는 용어에 대한 개념이 국한된 범위내에서 정립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밀교라는 용어가 정착되어 가고 있는 현시점에서 용어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는 것은 늦은감이 있으나 인도, 티베트, 중국, 한국, 일본에서 쓰이고 있는 용어에 대한 내용이 충분히 검토된 후 우리가 표현하고자 하는 밀교라는 용어에 걸맞는 개념을 재정립하여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서 밀교에 대한 그릇된 인식도 불식될 것이다.
1) 인도의 예
인도의 후기불교는 오래전부터 서양학자들의 주목을 받아 왔으며 지극히 편협된 분야만이 연구되어 왔다. 그들의 관심은 흔히 우리들이 접할 수 있었던 소작, 행, 초기요가탄트라가 아니라 중기이후의 요가탄트라 내지 무상요가탄트라에 쏠렸다. 또한 전체적인 탄트라의 연구는 도외시하고 한 부분만을 집중적으로 연구한 나머지 외설적이며 타락한 불교가 인도의 밀교를 대표하는 것으로 잘못 인식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와 같은 양상은 진리의 상징적인 표현이라는 관점에서가 아니라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사실만을 취급한데에 그 원인이 있다. 일시적으로 이런 내용들이 우리사회에 소개되어 불교계에서 논란의 대상이 된 일이 있으며, 기존의 밀교종단들이 막대한 영향을 받기도 했다. 그것은 전적으로 서양학자들의 편협된 연구에 책임이 있다. 만약 그들이 수트라와 탄트라의 접점이라고 할 수 있는 소작, 행탄트라를 연구하고 다음에 요가, 무상요가탄트라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면 인도밀교에 대한 오해는 줄어들었을 것이다.
그들이 사용하는 용어중에서 밀교에 상응하는 표현으로는 비밀불교(esoteric buddhism), 탄트라불교(tantric buddhism) 등이 있는데 이것은 서양학자들의 발상에 의한 것이며 요가탄트라나 무상요가탄트라를 지칭하는 말에 불과하다. 실재로 인도에서는 금강승(金剛乘, vajrayana), 구생승(俱生乘, sahajayana), 시륜승(時輪乘 kalacakrayana)이 라는 용어를 보편적으로 사용하였다. 이것은 소승, 대승과 더불어 불교의 전개과정에서 나타난 하나의 승(乘, yana)을 지칭하는 말로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밀교의 개념과 다르다.
당시 금강승교도들은 오단타푸리, 소마푸리, 비크라마시라, 나란다를 중심으로 활동하였으며 그들은 외교도(外敎徒)들과의 대론(對論)을 위하여 대소승의 불교는 물론 베다, 우파니샤드, 육파철학등을 학습하였다. 따라서 인도밀교는 대소승의 불교와는 개념상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인도불교사 중에서 최후기에 나타난 사상체계로 받아 들여야 할 것이다.
2) 티베트의 예
티베트불교는 현재 세계각국에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데 초기에는 이탈리아, 일본, 독일 등의 학자들에 의해서 연구가 시작되었다. 그들은 티베트불교에서 밀교라는 별개의 사상체계를 연구한 것이 아니라 서양인들은 산스크리트 원전이 남아있지 않은 대소승의 경전들이나 요가, 무상요가탄트라에 관심을 가졌으며, 일본인들의 경우는 대소승의 경전과 소작, 행탄트라에 관한 경전들의 연구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들은 밀교에 상응하는 용어로 탄트라불교, 비밀불교등을 사용하였으며 일본학자들의 경우는 일본밀교계에서 사용하는 용어들을 탄트라의 번역에 활용하였다.
그런데 티베트에서 최고의 전통을 가지고 있는 닝마파에서는 대소승의 불교와 더불어 진언금강승(眞言 金剛乘, gsang sngags rdorje theg pa)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이것은 닝마파의 개조인 파드마삼바바를 비롯한 샨타락시타, 아티샤들의 영향에 의한 것이다. 그들은 흔히 인도밀교의 학승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재로 티베트에 들어와 대승불교의 경전과 논서 및 탄트라 관계 경전들의 번역사업 및 제자의 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이와 같이 티베트불교계는 도입당시부터 대승불교와 진언금강승을 별개의 것으로 구분하지 않았다.
또한 닝마파에서 성립된 구승(九乘)의 교의 체계를 보아도 대승불교와 진언금강승의 학습이 함께 요구되었다. 이와 같은 전통은 현재 티베트의 각 종파에서도 계승되고 있다. 따라서 티베트에서도 밀교라고 하는 독립된 개념이 확립되지 않았고 대소승의 불교와 구분되는 하나의 승(乘)으로 받아 들여졌던 것이다.
3) 중국, 한국의 예
한자문화권에 속하는 동북아시아 3국은 용어의 구사에서 일치하는 점들이 많다. 특히 불교용어의 경우에는 한역불전의 용어들이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중국의 경우는 소작탄트라를 비롯하여 행, 요가탄트라의 경전들이 한역되었다. 소위 밀교경전 번역에 참가한 사람들은 선무외를 비롯하여 금강지, 불공들이 있다. 그들의 번역경전중에서는 밀교라는 용어가 쓰이기는 했으나, 그것이 대소승의 불교와 구분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보기에는 힘들다. 단 심오한 가르침이라는 의미에 불과했다. 근래에는 밀교에 해당하는 용어로 밀종이라는 말이 쓰이고 있는데 이것은 하나의 종파를 일컫는 대명사로 여겨진다.
한국의 경우는 밀교라는 용어가 언제부터 쓰였는지 확실하지는 않으나 현재 쓰이고 있는 밀교의 개념은 대소승(현교)보다는 우월한 가르침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또한 기존의 밀교종단은 서기 7, 8세기 등장한 대일여래를 중심으로하여 교리체계를 확립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에서 쓰이는 밀교란 개념은 소작, 행, 요가, 무상요가탄트라중에서 행과 초기요가탄트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실재로 행이나 초기 요가탄트라는 경전명에 탄트라라는 용어가 거의 쓰이지 않았으며 서양인들의 주요 관심분야인 무상요가탄트라와 내용상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4) 일본의 예
일본의 경우는 초기 도입당시부터 철저히 현교보다는 우월하다는 사상적 우월성이 강조되었다. 그것은 당시 도입자들의 의식적인 행위였다. 누구보다도 훌룡한 법을 전래했다는 것을 왕실과 관료들에게 나타내기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전래한 경전들의 목록을 작성하여 왕실에 올리고 왕의 신임을 받으려고 하였던 것이다. 또한 자신들이 도입한 교리에 관한 연구를 철저히 행했다. 그 후 일본밀교는 더욱 현교와 분리하려는 활동이 전개되었으며 기존의 종단들과도 갈등이 일어났다. 현재에는 수많은 밀교종단들이 형성되어 있으며 항상 현교가 아닌 밀교도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즉 일본밀교는 불교속의 밀교가 아니라 하나의 독립된 사상체계를 이루고 있다. 단 그들이 주장하는 교리체계속에는 반야심경이나 대승기신론의 일부가 포함되어 있다. 일본밀교는 소작, 행, 요가탄트라에 속하는 부분들이 교리체계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1. 밀교.진언종의 의미 흔히 [밀교 密敎]란 어떤 특수한 종교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불교 속의 한 흐름으로서, 즉 대승불교의 철저한 후계자로서 오히려 대승불교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밀교이다. 뒤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밀교가 힌두교 등 인도의 제종교와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은 물론이지만, 불교의 흐름 속에서 특수한 발전을 보아온 하나의 [비밀불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밀 密]이란 비밀을 의미한다. [비밀]이라는 말의 산스크리트어(梵語)는 구햐 guhya라는 말이 흔히 쓰이는데 그것을 번역하여 비밀, 또는 밀이라고 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밀교] 또는 [비밀불교]는 그 의미하는 바가 종교적 체험의 깊이를 강조하는 것이기 때문에 비밀교라든가 비밀불교라고 하는 것이다. 이른바 [깊고 오묘한 가르침]이라고 하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또한 밀교라고 할 때는 곧 현교(顯敎)라고 하는 말이 대조적으로 말해집니다. 사실, 홍법대사(弘法大師) 쿠카이(空海) 이후의 일본의 진언밀교에서는 상대적인 의미로 현교와 밀교라고 하는 말이 쓰여지고, 현교에 대하여 밀교가 어떠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가를 강조하려고 한 것이다. 여기에 관계된 것으로 쿠카이가 저술한 것, 또는 그 이후의 천태종의 학자들이 쓴 것, 그리고 헤이안(平安) 말기에 가꾸반(覺종;興敎大師)이 현밀차별을 논한 것 등 대단히 많이 있는데 그러한 것을 통하여, 현교에 대한 밀교의 특색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이 상당히 폭넓게 연구되고 있다. 이점은 밀교사상편에 들어가서 좀더 구체적으로 언급하도록 하겠다. 인도에 있어서의 유파의 명칭 밀교는 인도에서 발달하여 중국과 한국, 일본에 전해지고, 또한 티벳(西藏)에도 전해져서 각자 독자적인 전개를 보이고 있다. 먼저 인도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호칭은 [바즈라.야나 vajrayana]라고 하고 금강승(金剛乘)으로 번역한다. 또한 자신들이 대승의 발전 속에 더욱 깊고 크게 발전한 것임을 나타내기 위하여 [바즈라.마하야나 vajra-mahayana], 즉 금강대승(金剛大乘)이라고 과칭하기도 한다. 밀교의 근본경전인 {대일경}에도 대승이라는 말이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그때의 대승은 {대일경}이전의 대승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그보다 발전한 형태로서의 [우리 대승]이라는 의미의 대승이다. 또한 진언을 사용하고 있는 것을 강조하여 [만트라야나 mantrayana], 진언승(眞言乘)이라는 호칭도 있다. 그리고 밀교를 서양에서는 [탄트릭 부디즘Tantric Buddhism], [에소테릭 부디즘 Esoteric Buddhism]이라고 하는데, 7세기 이후부터 밀교 최후의 무렵(12세기경)까지의 밀교문헌을 탄트라Tantra라고 하는 것에 근거하여 밀교를 탄트라의 불교, 탄트릭 부디즘이라고 한 것 이다. 인도에서 성전을 나타내는 언어 수트라 sutra(팔리어;sutta)를 불교에서는 경(經) 또는 계경(契經)이라고 번역한다. 본래 그것은 [날실(縱絲)]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리고 탄트라도 본래는 [씨실(橫絲)]이라는 의미이다. 탄트라란 <넓게 한다>는 의미의 탄tan으로 부터 나온 말이라 하여 [그것에 의하여 지혜가 넓혀지는 것] 또는 [모든 것을 한데 모은 것], [한 번 만들어진 것이 많은 사람에게 이익을 주는 것, 이것이 탄트라]라고 확대 해석하기도 한다. 불교성전에서 수트라라고 하면 불설(佛說)이라는 것을 나타내고, 논사(論師)가 설한 것은 논서(論書)라고 한다. 그것에 대하여 탄트라는 역시 수트라와 같이 경전이지만 [불설]이라고 하는 것을 강조하는 것은 아닙니다. 가르침에는 다름이 없지만 수트라는 사상적(思想的)인 내용이 풍부한 데 비하여 탄트라는 실천적인 면에 보다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것으로 특징 짓기도 한다. 아무튼 수트라든 탄트라든 진리를 문자로 기록하여 남기는 것을 기계로 옷감을 짜는 것에 비유하여, 씨실과 날실의 교차에 의하여 우주의 진리를 파악할 수 있다고 하는 발상이 깔려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좀더 부연한다면 밀교는 독특하고 복잡한 수법(修法)과 관법(觀法)을 하고 있는 것이 현교(顯敎)의 수트라와 다른 점이라 하겠다. 그에 관한 의례(儀禮;修法의 規則과 方法)을 설한 문헌을 [의궤(儀軌)]라고 하는데, 그러한 여러 가지 종교적인 실천을 내용으로 하는 불교문헌이라는 의미로 탄트라라고 하는 말이 사용되게 된 것 이다. 이와 같이 탄트라는 본래 사상이나 철학을 설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대우주 즉 절대 세계와 소우주 즉 인간 세계가 본래 일체 (一體)라는 생각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지향하는 실천의 도(道), 즉 수도의 방법(修法)을 분명히 밝혀 주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읽거나 듣거나 하더라도 혹은 내용을 안다든가 이해한다고 해도 전혀 의미를 지닐 수 없다. 왜냐하면 탄트라는 오로지 그것에 따라 행동하고 실천함으로써 비로소 본래의 의의를 완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같은 불설(佛說), 즉 경전이면서도 수트라라고 하지 않고 탄트라라고 하게 된 것이다. 쿠카이(空海)의 용어 홍법대사 쿠카이는 밀교의 대성자(大成者)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밀교에 대한 용어의 사용방법이 대단히 풍부한다. 홍법대사의 저작을 통하여 어떠한 말을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가를 살펴보면, 여러 가지로 분류할 수가 있다. [진언종]이라고 하는 말은 쿠카이가 일본에 개창한 종파의 종명(宗名)이다. 그런데 쿠카이의 저술 속에는 이밖에도 진언밀교(眞言密敎), 진언비교(眞言秘敎), 진언승교(眞言乘敎), 진언비밀장(眞言秘密藏), 진언법교(眞言法敎) 등의 말이 자유자재로 쓰여지고 있다. 또한 쿠카이는 [밀교]라고 하는 말을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 그 밀교라고 하는 계열의 말로는 비밀승(秘密乘), 비밀불승(秘密佛乘), 비밀일승(秘密一乘), 비밀금강승(秘密金剛乘), 비밀진언장(秘密眞言藏), 비밀만다라교(秘密曼茶羅敎) 등이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금강일승 金剛一乘]이라고도 하고 있다. 일승불교라고 할 때는 법화일승, 화엄일승이라고 하듯이 여러 종파에서 제각기 자신의 종파의 우위를 내세우기 위해 강조했던 표현 가운데 하나이다. 즉 최고의 가르침이라는 것이다. 그것에 대하여 쿠카이는 금강일승, 그것이 우리 진언밀교이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쿠카이는 그야말로 밀교의 대성자로써 밀교를 철저하게 자신의 것으로 한 실천가였던 것인만큼 밀교를 나타내는 데에 여러 가지 표현을 사용하고 있고, 사용하는 단어에 대해서도 제각기 밀교의 특성을 나타내는 깊은 의미를 간직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진언종 앞에서 언급한 대로 밀교가 특히 일본에서 하나의 종파로 정착하고 있는 명칭은 진언종이다. 그렇게 진언종이라는 이름으로 정착하기에는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불공삼장 (不空三藏)이 번역한 {분별성위경(分別聖位經)}이라고 하는 작은 경 속에 [진언다라니종(眞言多羅尼宗)]이란 어떤 의미인가 하는 문장이 있다. 그 [진언다라니종]이라는 말에 주목하여 쿠카이는 힌트를 얻은 것이다. [다라니]를 빼고 [진언종]이라는 말을 할 수 가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쿠카이는 종명을 [진언종]이라 한 것인데, 다시말하면 헤아안 초기에 중국에서 가지고 온 밀교를 일본불교의 여러 종파 속에 자리잡게 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명칭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 천태종이라 한 것에 대하여 자기 쪽은 밀교라 하지 않고 진언종이라 한 것이다. 산스크리트어 [만트라mantra]를 [진언(眞言)]이라고 번역한다. 만트라는 오래된 의미로는 신들에게 바치는 찬가, 신을 찬미하는 짧은 말이다. 그것은 베다veda 등의 종교에도 이미 존재하고 있다. 이와 같이 신들에게 바치는 찬가라는 의미를 가진 말을 쿠카이는 [진실어 眞實語;진실한 말]라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또한 [여의어 如義語]라고도 하는데 [뜻과 같다(如義)]고 하는 것은 진리의 말, 진실의 말을 뜻한다. 법신 대일여래(法身大日如來)의 자내증(自內證;스스로 깨달은 내용) 그 자체를 설명한 진실의 가르침, 진실의 말씀, 그것을 [진언]이라고 해석한다. 그러므로 쿠카이는 누구나 믿어서 의심이 없는 우주의 진리 그 자체, 부처님의 깨달음의 내용 그 자체를 가르침 속에 나타내고 있다고 하는, 그러한 법신설법(法身說法)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하는 하나의 종파를 [진언종]이라고 한 것이다. 2. 밀교의 분류 지역별로 본 밀교의 분류 밀교를 지역적으로 볼 때, 인도에서 중국 한국 일본 또는 티벳 몽고에 이르기까지 널리 퍼져 있고, 시간적으로도 긴 역사적 발전과 변천이 있다. 그러므로 간단히 밀교의 전체를 설명할 수는 없으며, 따라서 밀교라고 할 경우는 어디의 밀교인가를 한정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고 흔히 말한다. 우선 지역적으로 분류하여 인도에서부터 살펴보도록 하겠다. 인도의 밀교는 1,300년의 역사가 있다. 밀교는 근본불교시대부터 13세기의 초기까지, 처음에는 미미한 정도였지만 7세기 이후는 급속히 발전하고 있다. 이와 같이 인도의 밀교는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 뒤에 중국에 전해진 밀교는 한역경전에 의한 밀교이다. 처음은 3세기 무렵이고 역경에 의해서 그 밀교의 사상이 겨우 보급되는 정도였는데, 8세기 중당(中唐)무렵이 되면 밀교 경전의 전역도 왕성하게 되고 밀교라는 한 종파가 여러 종파 사이에 독립하여 발전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계열의 밀교가 그대로 일본의 밀교로 된 것이다. 일본의 밀교는 중국밀교의 전래에 의한 것이지만, 나라(奈良)시대에는 아직 하나의 종파로 독립을 보지 못하고, 헤이안 시대의 초기에 홍법대사 쿠카이에 의해서 비로소 한 종파로 독립한 진언종이 성립한 것이다. 그러나 또한 전교대사 사이쵸(傳敎大師最澄)가 전한 일본의 천태종에는 천태밀교라고 하는 것이 있다. 일본의 천태종은 {법화경} 뿐만 아니라 밀교를 겸해서 배우고 있는데, {법화경}과 밀교는 똑같이 높은 사상적 입장에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것을 흔히 [원밀일치(圓密一致)]라고 한다.천태밀교는 [태밀(台密)]이라 하고 진언밀교는 [동밀(東密)]이라고 한다.이 경우 동은 교또(京都)의 동사(東寺)를 가리킵니다. 고야산의 밀교라고 해도 좋지만 어느 시대에 동사가 진언종의 가장 중심으로 되고 동사의 쵸쟈(長者)가 진언종의 대표이고 다른 큰 본산(本山)을 통제한적이 있었다. 거기에서 동사가 진언종을 대표하는 의미에서 동밀이라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일본의 밀교는 동밀과 태밀의 두 가지 흐름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티벳에 전해진 밀교의 흐름도 있고 많은 경전의 티벳역과 밀교의 홍통, 그리고 티벳밀교의 발달 변천이 있다. 인도밀교의 분류 인도에서의 밀교의 발생.발달.변천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인도의 문헌에 의해 밝힌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것은 넓은 의미에서의 인도불교에 대해서도 사정은 같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인도문헌으로서의 불교문헌이든 밀교문헌이든 어느것도 거의 현존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충분하긴 하지만 중국에 전역된 문헌자료에 근거하여 인도불교 또는그 일부문으로서의 밀교경전의 성립사를 추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인도밀교경전의 성립사에 대해서는 뒤에 중국밀교의 성립사를 개관하면서 함께 언급하도록 하겠다. 여기서는 인도밀교에 대해서 내용적으로 구분하여 중국.일본과 티벳이라고 하는 두 가지 방향으로 살펴보겠다. (1)중국.일본에서의 분류방법 먼저 중국.일본의 사람들이 생각하거나 약속한 것으로는 밀교를 [잡부밀교(雜部密敎)]와 [순수밀교(純粹密敎)]로 나누는 것이다. 그 경우 인도밀교의 흐름 속에 초기밀교에서부터 650년 경까지의 사이에 성립된 것을 경전의 내용으로 보아 이들을 일괄하여 잡부밀교라고 한다. 그리고 현장삼장 현장삼장이 인도에 갔다 돌아올 무렵, 또는 그 직후, 650-700년경에 {대일경}과 {금강정경}이 성립하는데, 그들 경전은 그 내용으로 보아 순수밀교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도 엄밀히 말하면 여러 가지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우선 ① 성불(成佛), 즉 부모에 의하여 생긴 이몸 그대로 부처님의 경지를 체현한다고 하는 즉신성불(卽身成佛)을 강조하고, ② 마하비로자나불(摩訶毘盧遮那佛;大日如來)이라고 하는 부처님이 등장하여 신앙의 대상으로 되며, ③ 석가모니불이 설하신 것이 아니고 법신 대일여래가 설하신 경전이라고 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는 경전이다. 여기서 순수(純粹)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 순수하다는 것인가. 밀교라고 하면 자칫하면 정통의 불교에서 벗어난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많은데, 그러나 밀교는 석존 이래의 불교의 흐름, 즉 대승불교의 역사적인 발전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오히려 대승불교의 철저한 후계자로서 가장 훌륭하고 우수한 것이 밀교의 정통적인 흐름이라고 평가하여 순수밀교라고 한 것이다. 그것에 대하여 잡부(雜部)라고 하는 것은, 좀 순수하지 않다든가 여러 가지의 것이 포함되어 있다든가 하여, 언어적으로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으나 그쪽에도 밀교의 한 특징은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중국이나 일본의 학자들이 인도밀교를 [잡부밀교]와 [순수밀교]로 구분한 방식은 그다지 엄밀한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전혀 구별하지 않고는 웬지 모르게 좀 이상하게 보일 경우에는 요즈음도 이러한 구별 방법이 통용되고 있다. (2) 티벳불교에서의 분류방법 그러나 티벳에서의 인도밀교에 대한 관점은 상당히 진보된 방법을 보이고 있다. 티벳의 전승으로는 1,300년 정도의 인도밀교의 역사를 구분하여 제1기에서 제4기까지 네 가지의 시기로 나누고 있다. 그 제1기는 작(作)탄트라(kriya-tantra)라고 한다. 크리야(作)라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 종교적인 행위, 다시 말하면 수법(修法)에 대한 작법(作法)을 중심으로 한 것으로 그러한 것을 쓴 탄트라가 성립한 시대라는 의미인 것이다. 내용적으로 말하면 이 속에는 밀교의 중요한 것이 거의 들어 있다. 주법(呪法), 다라니, 인계(印契;mudra) 등 여러 가지 수법의 작법, 만다라 등도 이미 자세히 설해져 있다. 다만, 즉신성불 또는 속질성불(速迭成佛)이라고 하는 것은 아직 그다지 언급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수법(修作)한다는 것은 현세이익적인 내용, 즉 사람들의 바램은 어느 것이라도 이루어 준다는 기원적인 수법을 말한다. 주문이나 다라니를 외우면 모두 구해진다든가 재난으로부터 구원된다고 하는 밀교이다. 그것이 제1기의 밀교라고 한다. 제2기가 행(行)탄트라(CAriya-tantra)이다. 챠리야는 [행 (行)]으로 번역한다. 대승불교의 여러 가지 수행이라고 하는 의미에서 수법만이 아니고 넓은 의미의 수행도 하고 이론화(理論化)도 한다. 이론화란 대승불교를 근거로 하여 거기에다 여러 가지를 생각해 간다는 것이다. 경전의 내용이 그렇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수행과 이론의 양방면을 설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대일경}등을 읽어 보면 잘 알 수 있는 것인데, 그래서 구체적으로는 {대일경} 등을 가리킵니다. 밀교의 티벳 전승이라고 하면 이것이 제2기 이다. 제3기가 유가(瑜伽)탄트라(Yoga-tantra)로 되어 있다. 이것은 요가를 중심으로 하는 밀교이다. 요가 또는 삼마디 (samadhi)라고 하는데, 이른바 선정(禪定)을 닦아 정신통일을 하고 그 속에서 부처님과 내가 합일한다고 하는 것을 강조하는 그것을 [요가밀교]라고 한다. 그것의 대표적인 것이 {금강정경}이다. 그러므로 {대일경}과 {금강정경}의 성립은 연대적으로도 조금 다릅니다. {금강정경} 쪽이 조금 후대에 성립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내용적으로 대일여래가 설법하고 즉신성불을 설하는 등의 의미로는 순수밀교(純密)에 속하지만 순밀을 전반과 후반으로 나눈다면 {금강정경}은 그 후반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큰 문제로 되는 것은, 중국.일본의 불교에서는 {대일경}과 {금강정경}을 [양부(兩部)의 대경] 또는 [양부불이(兩部不二)]라 하고 그것이 지금까지의 진언종의 전승인데, 티벳 불교의 관점에서는 그것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 전과 후, 이를테면 챠리야 탄트라와 요가 탄트라에 차이가 있다를 것을 티벳의 학자는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의 밀교연구자는 이러한 문제를 매우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고, 일본의 밀교 쿠카이의 밀교도 다시 보지 않으면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학문적으로는 저도 거기에 동의한다. 그러나 {대일경}과 {금강정경}이 일본불교에서는 순수밀교라고 하는 하나의 틀 속에 넣어져 있는 것이다. 제4기가 무상유가(無上瑜伽)탄트라(Anuttarayoga-tantra)이다. 이것은 후기밀교(後期密敎)라고도 하는데 거기에는 여러 가지 변천이 있다. 그러나 이 후기밀교의 분야는 중국이나 한국, 일본밀교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않은 소위 탄트리즘(tantrism) 이라는 것인데, 인도와 구미의 학자가 연구하는 영역은 거의가 이쪽이다. 750년부터 1,000년 정도까지의 경향을 모아서 무상유가 탄트라라고 하고 있다. 쾌락사상이라든가 좌도밀교(左道密敎)라고 하는 여러 가지 발달.변천도 그 최후의 후기밀교 속에서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중국, 한국, 일본의 밀교에서는 전혀 수용한 흔적이 없다. 왜냐하면 무상유가탄트라가 인도에서 융성하였던 것은 9세기 이후의 일로 홍법대사 쿠카이 및 그 제자가 유학했던 시대에는 그것이 아직 중국 불교계에 알려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인도밀교의 긴 역사를 보면 중국, 한국, 일본에서는 잡부밀교와 순수밀교라는 비교적 단순한 구분만이 있으나, 티벳의 네 가지 시기로 구분하는 쪽이 인도밀교를 보다 잘 파악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의 연유에서 저는 밀교를 분류할 때에는 어디의 밀교를 가리키는가 라고 하는 것을 반드시 전제로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한 것이다. ▶ 참고/출처 문헌
- 불교사상의 이해, 불교교재편찬위, 1999, 불교시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