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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달라이 라마 자서전「유배된 자유 (Freedom In Exile)」[4]

chomice 2008. 1. 2. 16:10
제8장 - 1959년, 참담했던 그 한 해

1960년에 티벳 자유투사들에 의해 탈취된 인민해방군의 한 문서에 따르면 1959년 3월에서 그 이듬해 9월 사이에 군사작전에 의한 사망자는 87,000명이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이 숫자는 자살, 고문, 기아로 이한 사망자는 제외된 것이다.) (176)

여러 해 동안 인도 국민과 정부는 자기네들도 극심한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티벳 난민들에게 재정적으로는 물론 여러 방면으로 많은 지원을 해주었다. 나는 다른 어떤 난민들도 그렇게 잘 대접받았으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나는 티벳 난민들이 재정적인 도움을 필요로 할 때마다, 바로 그 순간에도 아주 기본적인 교육도 받지 못하고 있는 인도 어린이들이 수십만 명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곤 했다. (178)

네루는 잘 웃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는 대답을 하기 전에 약간 내민 아랫입술을 떨면서 조용히 앉아 얘기를 들었다. 그의 대답은 언제나 분명하고 정직했다. 무엇보다도 그는 내게 나 스스로의 양심대로 말하고 행동할 완전한 자유를 허용했다. 반면 중국인들은 항상 얼굴에 웃음을 띠고 있었지만 항상 나를 속였다. (185)

녹야원에서 행한 첫 한 주 동안의 설법은 내게 있어서 일대사건이었다. 붓다가 2,500여 년 전에 가르침을 베풀었던 바로 그 자리에서 내가 설법한다는 것은 굉장한 일이었다. 설법을 하면서 나는 우리가 겪고 있는 시련의 긍정적인 측면을 강조했다.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고통은 자유에 이르는 첫걸음이라는 붓다의 말을 들려주었다. 옛 티벳 격언에도 그와 비슷한 말이 있다. ‘고통으로 기쁨의 크기를 잰다’는. (186)


제9장 - 10만명의 난민

산업이 발달한 나라의 국민들로부터 오는 이러한 원조의 손길을 받으면서 나는 소위 ‘보편책임’이라고 하는 나의 근본적인 믿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그것이야말로 인류발전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보편책임’이 없다면 세계의 모든 나라의 격차는 심화될 것이다. 우리가 이 지구상에서 고립되어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좀더 많은 사람들이 깨닫게 된다면-즉, 결국 우리들은 모두 형제 자매라는 것을-단지 지구상의 일부분의 발전이 아닌 인류 전체의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다. (205)


제10장 - 승복을 걸친 늑대

지도자 되는 사람은 서민들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야 된다는 것을 나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배워서 알고 있었다. 그러지 않을 경우 자기 주위에 있는 자문관이나 관리, 혹은 그 밖의 측근들 때문에 판단을 그르치기 십상이다. 지도자의 측근들이 자기들 나름의 필요에 의해서 지도자로 하여금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214)

우리는 지금 이 시각에도 티벳 땅에서는 불안한 소요가 많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물론 나는 요즘 들어서는 나를 ‘승복을 걸친 늑대’라고 부르는 베이징의 정치지도자들과 직접적으로 접촉한 적은 없다. 나는 중국 정부의 비난의 표적이 되었다. 이 달라이 라마라는 존재가 단지 종교적 지도자인 척 가장하는 한 사기꾼에 불과하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실제로 중국인들은 나를 일컬어 도둑, 살인자, 약탈자라 하곤 한다. 그들은 심지어 내가 인디라 간디를 위해 놀랄 만한 성적(性的) 봉사를 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215)

특히 나는 서로 다른 종교적 전통을 가진 사람을 포함하여 삶의 배경이 제각기 다른 사람들을 만나기를 좋아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크리슈나무르티였다. 그는 날카로운 지성과 상당한 학식을 겸비한 매우 뛰어난 인물이었다. 그는 외모도 점잖아 보였고, 삶과 그 의미에 대해서 매우 분명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또 그의 가르침으로 많은 도움을 받은 그의 추종자들도 만났다. (222)

이 시기에 가장 행복했던 기억 중의 하나는 토머스 머튼 신부를 만날 수 있었던 일이다. 그는 트래피스트파의 미국 수도사였다. 그가 다람살라에 온 것은 태국에서 죽기 몇 주 전 1968년 11월이었다. 우리는 한 번에 두 시간씩 사흘을 계속 만났다. 그는 중키에 몸매가 다부진 사람이었으며 오히려 나보다도 머리 숱이 적었다. 물론 나처럼 삭발을 했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다......그러나 놀라운 것은 그의 외모가 나이라 그의 내면 세계였다. 나는 그가 소박하면서도 정신적인 깊이가 있는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스스로 기독교도임을 표방하는 사람들 중에서 영적인 힘을 느끼게 해주었던 사람은 그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 후 나는 그와 비슷한 성격의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기독교인이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내게 가르쳐준 사람은 머튼이었다......우리는 서로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지적이고 영적인 문제에 관해서 토론했으며 종교 교단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이 모든 것은 참으로 유용한 상호이해의 전범이 될 만 했다. 그것은 단지 불교와 기독교 간의 유사성 때문만은 아니었다......머튼은 다른 두 종교 전통 간에 훌륭하 교량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모든 종교가 사랑과 자비의 가르침으로써 인간을 선으로 인도한다는 점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토머스 머튼 신부와 만나고 난 뒤 죽 나는 여러 다른 기독교인들과 만나게 되었다. 유럽 여행길에서 나는 여러 나라를 돌며 수많은 수도원을 방문했고 그때마다 많은 감명을 받았다. 내가 만난 수도사들은 자신들의 종교적 의무에 헌신적이었으며 나는 그것이 몹시 부러웠다. 수적으로는 적었지만 그들의 자질과 사회에 대한 공헌도는 매우 높다는 데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와 대조적으로 우리 티벳에는 망명중이긴 하지만 상당히 많은 수의 승려들이 있다. 아마 망명한 인구의 4~5퍼센트는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기독교 수도사들이 보여준 만큼 헌신적인 자세를 항상 보여주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나는 또 기독교의 모든 교파가 인류의 건강과 교육을 위해 자선단체를 조직해 실질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감명을 받았다. 그들은 인도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우리가 기독교의 형제 자매들한테서 배울 점도 이것이다. 불교도들도 사회를 위해 이와 같은 기여를 할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나는 비구승 비구니 할 것 없이 불교도들이라면 누구나 자비에 대해서 그토록 많은 말을 하지만, 실제로 그것을 행동에 옮기지는 않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나는 여러 번 이 문제에 대해서 다른 나라 불교도뿐 아니라 티벳 불교도들과 함께 얘기를 나누었으며, 또 실제로 그와 같은 단체를 조직하도록 독려했었다. 한편, 우리가 기독교에서 배울 수 있는 점이 있는 반면 그들도 우리한테서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우리가 발전시킨 명상술이라든가, 마음을 집중시키는 훈련 같은 것은 그들의 종교적인 수행에도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223~224)

그들은(티벳 게릴라) 이 공격으로 1959년 3월부터 1960년 9월에 이르는 동안 라사에서만도 87,000명이 사망했다는 기록이 적혀 있는 문서를 노획하게 되었다......결국 티벳에 있는 동포들에게만 고통이 가중되게 되었다. 더욱이 반군들의 이러한 활동이 중국 정부에게 티벳이 외국 강대국들의 도움으로 독립을 쟁취하려 한다는 비난의 빌미를 제공했다. 물론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티벳의 독립투쟁은 티벳인들의 자발적인 의지의 결과이다.
결국 미국은 1970년대에 중국 정부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면서 게릴라를 지원하던 정책을 포기했다. 이 조치로 볼 때 그들의 지원은 티벳의 독립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반공정책의 일환이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225)

나는 그들의 결의를 항상 존중해 왔으나 그들의 행위에 공공연히 찬성할 입장에 있지는 않았으며......타클라가 전하는 얘기에 따르면 그들은 배신당했다고 느낀 것 같았다. 지도자 몇 사람은 실제로 무장해제를 거부하고 스스로 목을 잘라 자살했다. 나는 그 얘기를 듣고 경각했다.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다. 내 행동이 옳다는 생각은 들었으나 티벳을 위한 그들의 용기와 충성심과 사랑에 대하여 내가 거부의 뜻을 표한 것이 잘못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226)


제11장 - 동서양 여행

태국에서......내가 만난 고승 몇 분은 몹시 인상적이었다. 일본에서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서로 다른 전통을 갖고 있으나 많은 공통점이 있다는 것에 대하여 여러 차례에 걸쳐 토론하였다. 이 토론은 나로 하여금 티벳 전통 불교가 불교의 완전한 형태에 가깝다는 믿음을 갖게 하였다. (229)

나는 교황 바오로 6세와 잠시 환담했다. 그 환담에서 나는 종교의 교리가 어떻든지 간에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정신적 가치라는 나의 소신을 피력할 기회를 가졌다. 그는 내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했으며 우리는 좋은 낯으로 헤어졌다. (229)

거기서 나는 유태교 랍비를 한 사람 만나게 되었다. 그것은 특히 감격적인 경험이었다. 말이 잘 통하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얘기를 나눌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럴 필요도 없었다. 그의 눈에서 나는 유태 민족이 당한 고통을 읽을 수 있었으며, 남의 일 같지 않아서 눈물이 절로 났다. (230)

나는 표면적인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어디를 가든 사람은 근본적으로 똑같다는 나의 믿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들 모두 나와 마찬가지로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다. 누구도 고통을 원하지 않는다. 누구나 사랑을 소중한 것으로 여기며, 동시에 모든 사람이 다른사람들에게 사랑을 보여 줄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인류가 서로간의 우정과 상호이해를 좀더 증진시킬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모든 사람들이 흑 아니면 백이라는 논리와,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선택의 논리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상호의존성과 상대성을 간과한 것이다. 그들은 두 가지 극단적인 견해 사이에 놓여있는 회색지대를 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또 한 가지는 많은 사람들이 큰 도시에서 안락하게 살고 있으나, 실제로는 인류애라는 커다란 덩어리로부터는 소외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특히 희한한 점은 그토록 물질적으로 풍요하며, 형제 자매와 다름없는 수많은 이웃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개나 고양이들한테만 정을 쏟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정신적 가치의 결핍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겼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는 부분적으로는 선진국의 삶에 필수불가결한 저 지나친 경쟁 의식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경쟁의식은 단지 두려움과 깊은 불안감만을 조장할 뿐이다. (232~233)

내가 말하는 바는 대충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한 인간으로서 나는 ‘보편책임’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이 ‘보편책임’은 우리 인간 모두가 서로에 대해서, 그리고 모든 중생에 대해서, 더 나아가 자연에 대해서도 책임이 있음을 뜻한다.
둘째, 한 승려로서 나는 서로 다른 종교들이 화합하고, 상호이해를 증진해야 한다는 것을 얘기한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모든 종교는 인간을 좀더 나은 존재로 이끄는 것이며, 철학적인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모든 종교는 인류가 행복을 추구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며, 철학적인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모든 종교는 인류가 행복을 추구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내가 ‘세계종교’를 지지한다거나, 아니면 무슨 ‘초종교’ 같은 것을 추구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차라리 나는 종교를 약 같은 것이라고 본다. 병의 증상이 다를 때 의사들은 증상에 따라 다른 처방을 한다. 모든 사람의 정신적 질병도 같지 않기 때문에, 각기 다른 정신적인 약을 필요로 하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사람의 티벳인으로서 그리고 더 나아가 달라이 라마로서 나는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한, 나의 조국 티벳에 대해서, 그리고 티벳 민족과 문화에 대해서 얘기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점령당한 나의 조국과 고통받는 민중에 대해서 크나큰 관심을 보여줄 때 내가 용기를 얻고 정의를 위한 투쟁을 계속할 수 있는 힘을 얻고 있다 할지라도, 나는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단지 티벳만을 지지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 나는 그들이 정의를 지지한다고 생각한다. (233~234)

내가 서양인들과 만나 얘기하면서 알게 된 것은 그들은 대개가 몹시 회의적인 사고를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나는 의심하는 회의적 태도란 더 진전된 질문의 근거가 될 때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234)

때문에 나는 정치문제에 다다르면 대화를 중단했다. 나는 그것을 피하고 싶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의 의견을 말할 권리가 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 내가 할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234)

해외에 갈 때마다 나는 종교간의 대화를 조장할 생각으로 가능한 한 많은 수도자들과 만나려고 하였다. 언젠가 외국에서 나는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기독교인 몇 사람을 만났다. 그들과 협의하여 몇 주 동안 시한을 정해서 티벳승려가 기독교 수도원으로, 그리고 같은 수의 기독교 수도자가 인도에 있는 불교 사원을 견학하게 하는 상호 교환방문을 추진하였다. 그것은 양측에 똑같이 매우 유용했음이 입증되었다. 특히 우리한테는 다른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다. (235)

현재의 카톨릭 교황[요한 바오로 2세]에게 나는 깊은 존경심을 품고 있다. 처음부터 우리 사이에는 비슷한 역사적 배경으로 인하여 공통저인 대화의 장이 마련되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내가 본 그는 매우 현실감각이 뛰어나고 포용력이 있었으며, 개방적이었다. 그는 의심할 바 없이 위대한 정신적 지도자이다. 자신을 암살하려 했던 사람을 형제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높은 정신적 경지를 개척한 수도자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1988년 영국 옥스퍼드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하고 돌아오는 길에 델리 공항에서 만난 테레사 수녀(그녀도 그 회의에 참석했다) 또한 존경스러운 분이다. 나는 철저하게 검약한 그분의 태도에 감명을 받았다. 불교적인 입장에서 볼 때 그녀는 보살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뛰어난 정신적 지도자라고 생각되는 또 한 사람은 스페인 몬세라 근처에서 은거하고 있는 카톨릭 수사였다. 그는 동양의 은자처럼 빵과 물과 약간의 차만 먹고 오랫동안 그곳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는 영어를 잘하지 못했다. 오히려 나보다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의 눈빛을 보고 진정한 의미의 종교적 수행을 쌓아온 비범한 인물 앞에 앉아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에게 무엇에 대해 명상하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사랑”이라고 짧게 대답했다. 그후로 나는 그를 티벳의 영적 스승인 밀라레파의 이름을 따서 현대의 밀라레파라고 생각했다. 밀라레파 역시 명상과 종교적 저술에 몰두하며, 오랫동안 암굴에서 숨어 살았다.
내가 여러 번 만나 대화를 나누었던 또 한 사람의 종교 지도자는 위대한 캔터버리 대주교인 로버트 런시 박사(그의 용기있는 사절인 테리 웨이트는 기도할 때마다 생각나는 사람이다)였다. 우리 두 사람은 종교와 정치는 서로 조화되어야 하며, 인류에 봉사하는 것이 종교의 의무라는 것, 그리고 종교가 현실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에 의견을 함께 했다. 기도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오히려 종교인들은 세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행할 도덕적인 의무가 있는 것이다. (235~237)

어느 인도 정치가와 대화를 나누다가 이 문제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꽤 겸손하게 이런 말을 했다. “오, 그러나 우리는 그저 정치가일 뿐입니다. 종교인이 아니죠. 우리의 첫 번째 관심사는 정치로서 국민들에게 봉사하는 것입니다.” 나는 대꾸했다. “정치가들은 은둔하고 있는 은자들보다도 오히려 더 종교를 필요로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은자가 불순한 동기에서 행동한다고하면 그는 그 자신만 망칠 것입니다. 그러나 불순한 동기를 가진 사람이 이 사회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위치에 있다고 한다면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엄청나게 나쁜 영향을 받게 될 것입니다.” 나는 정치와 종교 사이에 아무런 모순점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종교란 무엇인가? 나는 선의에서 나오는 모든 행동은 다 종교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반면에 선의를 갖지 않고 있다면 사원이나 절에 모여드는 군중은, 설사 기도를 하고 있는 승려라 할지라도 결코 종교적인 행위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없다. (237)

사람들이 불교 수행을 함으로써 도움을 받았다는 얘기를 들으면 기분이 좋지만, 종교를 바꾸고 싶다는 얘기를 해올 때면 매우 조심스럽게 그리고 깊이 생각한 후에 결정하라고 충고한다. 새로운 종교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정신적 갈등을 초래하기 쉬우며 또 항상 생각보다 어려운 것이다. (238)

나는 이러한 새로운 불교 수행자들이 증가함에 따라서 그들 일부가 분파주의적으로 나가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이것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다. 종교는 절대 분쟁의 씨앗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인간 사회를 또 다시 분열시키는 것이다. 나는 다른 종교 역시 인간의 행복에 기여한다는 나의 깊은 신념에서 다른 종교 의식에도 참가해 왔다. 그리고 고금의 많은 티벳 라마승의 예를 본받아 가능한 한 많이 다른 종교 전통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아왔다. 일부 종파가 수행자들을 특정 전통 아래 묶어두는 것을 바람직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사람들은 언제나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할 권리가 있다. 더욱이 티벳 사회는 다른 민족의 신앙에 대해서 언제나 관대하다. 티벳 내에서는 이슬람교 사회도 번창하고 있으며, 기독교 전도사들 역시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활동하고 있다. 나 또한 종교와 사상에 대해서는 자유롭게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분파주의란 일종의 독인 것이다.
나의 종교적 수행에 대하여 말하자면, 한마디로 나는 보살의 이상을 추구하는 삶을 살고자 한다. 불교적 사유 방식에서 보살은 불도를 닦는 사람으로서 모든 중생을 고통에서 해방시키려고 그 자신을 헌신하는 사람을 뜻한다......그러므로 보살의 이상은 무한한 지혜로 무한한 자비를 행하고자 하는 열망을 뜻한다. (230)

티벳 불교에서는 비구에 대해서는 253개의 계율이 있고, 비구니에 대해서는 364계율이 있다. 이 계율을 지킴으로써 생의 혼란과 근심으로부터 자유롭게 될 수 있는 것이다......가장 근본적인 네 가지 계율은 단순한 금기로서, 승려는 죽이지 말며, 자신의 정신적인 성취도에 대해서 거짓말하지 말 것이며, 마지막으로 여색에 대해 순결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이 중에 어느 한 가지라도 계율을 범한다면, 그는 이미 승려라고 할 수 없다.
나는 가끔 이러한 독신에 대한 맹세가 바람직한 것인지, 또 진정으로 가능한 것인지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그러한 금욕의 수행이 단지 성적 욕망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고 얘기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설명이란 생각이 든다. 그와 반대로 차라리 이러한 욕망 자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수행의 필요조건이며, 더 나아가 그것을 이성의 힘으로 초월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이렇게 근본 욕망을 극복하면, 그제서야 마음은 크나큰 힘을 얻는 것이다. 성적 욕망이 왜 문제가 되는가? 맹목적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사람과 성적인 관계를 하고 싶다’고 말하는 것은 ‘나는 이 세상에 만연한 빈곤을 뿌리뽑고 싶다’는 욕망의 표현과는 그 이성적, 합리적 계기가 같지 않은 것이다. 더 나아가 성적 만족은 단지 일시적 만족감을 주는 데 그칠 뿐이다. 이것은 위대한 인도의 학자였던 나가르주나(龍樹)가 말한 바와 같다.
어디가 가렵다면 긁으라.
그러나 전혀 가려움이 없는 편이
몇백 번 긁는 것보다 더 나으리라. (240)

내가 매일같이 행하는 수행을 소개해 볼까 한다. 나는 적어도 다섯 시간 반 이상은 기도와 명상과 공부에 쓴다. 그리고 짬이 있을 때마다(식사중이나 여행중에도) 또 기도를 한다. 그렇게 하는 데에는 세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다. 첫째, 그렇게 함으로써 나의 일상의 의무를 수행하는 데 도움이 된다. 둘째, 시간을 생산적으로 보낼 수 있다. 셋째, 두려움을 몰아내 준다. 그러나 불교도로서 내가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종교적인 수행과 일상적인 생활 사이에 어떤 구별도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종교 수행은 스물네 시간 근무하는 직업과 같다. 실제로 일어나서 씻고, 먹고, 잠들고 하는 모든 행위 전에는 기도를 한다. 탄트라를 수행하는 사람들에겐 깊은 잠이나 꿈을 꾸는 상태에서까지 이루어지는 수행이 죽음에 대한 가장 중요한 준비작업이다. (240)

이러한 일상적 수행의 이론적 근거는 아주 간단하다. 내가 불전에 오체투지의 예를 행하는 것은 삼보에 ‘귀의’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다음으로 이러한 수행은 나의 심신을 강화해 준다. 그것은 모든 존재가 무상하다는 진리와 고통받고 있는 존재의 실상을 깨달음으로써 가능해진다. 이러한 두 가지 깨달음과 수행은 나의 심신을 강화해준다. 그것은 모든 존재가 무상하다는 진리와 고통받고 있는 존재의 실상을 깨달음으로써 가능해진다. 이러한 두 가지 깨달음에 의거하여 자비, 이타행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타심, 즉 자비심을 발하기 위해서 나는 소위 적을 포함한 모든 중생을 향해 애정을 갖게끔 하는 모종의 정신적 수행을 한다. 예컨대, 나는 어떤 사람을 나의 적으로 만드는 것이 그 존재 자체가 아니라 그 존재의 행위라는 것을 스스로 일깨운다. 만약 그 행위만 바뀐다면, 적이었던 사람도 곧 훌륭한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명상은 공Sunya(空)사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명상하는 동안 나는 사물의 상호의존성의 미묘한 의미에 온 정신을 집중한다. 이 수행에는 소위 ‘신성한 요가’인 라이 날조르Lhai naljor가 포함되어 있다. 이 요가를 하는 중에 나는 갖가지 만다라를 이용해서 나 자신이 서로 다른 신성의 연속체임을 볼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외적으로 독립된 실체에 대한 믿음을 근거로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나는 나의 마음을, 감각기관에 의해서 산출된 잡다한 정보로부터 자유로워진 상태에 집중시킨다. 이때 마음은 모호한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전히 각성된 상태에 있게 된다. 이것은 일종의 순수의식의 훈련이다. 이 상태를 정확히 말하기는 어렵다. 이것은 과학자들이 ‘공간-시간’ 개념의 진정한 의미를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 ‘순수마음’을 언어로나 일상의 경험으로써 설명하는 것도 몹시 어렵다. 그것은 간단한 수행이 아니다. 그것을 숙달하는 데만도 몇 년이 걸린다. (242)

일상의 수행에서 중요한 부분은 죽음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느냐에 관한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죽음에 대해서 두 가지 태도를 갖는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죽음을 아예 무시해 버린다. 그런 경우에 아마 얼마동안은 그 죽음에 대한 생각을 잊어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또 한 가지 태도는 죽음에 대해 숙고하고 그것에 맞닥뜨려서 분석함으로써 죽음이 야기시키는 불가피한 고통을 극소화시키려고 애쓰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태도는 어느 길이든 참으로 죽음을 극복하는 방법은 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불교도로서 제 3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즉 죽음을 삶의 평범한 진행 과정의 일부로 본다. 나는 죽음을 윤회 속에 있는 동안에 일어나는 실제적인 무엇으로 받아들이며,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걱정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죽음을 옷이 낡고 헤졌을 때 새 옷으로 갈아 입는 것과 같은 것으로 생각한다. 죽음은 그 자체로 끝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언제 어떻게 닥쳐올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죽음이 닥치기 전에 미리 방비를 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불교도로서 나는 또한 죽음을 실제로 경험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아주 심오하고 유익한 경험을 얻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훌륭한 영적 스승들은 스스로 자신을 이 지상의 존재로부터 해방시킨다. 즉 그들은 명상을 하는 동안에 죽는다. 그럴 때 그들의 신체는 의학적으로 사망한 후에도 오래도록 썩지 않는다. (242~243)

안거 수행의 목적은 내면계발에 온 정신을 집중하기 위한 것이다. 평소에는 그러한 기회를 갖기가 몹시 어렵다......수행의 폭과 깊이를 더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기간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지금의 나는 정신적인 경지에 있어서는 아주 초보적인 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243)

사람들이 자신과 남들을 행복으로 이끄는 길이 반드시 불교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믿지는 않는다. 오히려 나는 전혀 종교를 갖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가능한 것이라고 믿고 있다. 내 일생에 일어난 많은 사례가 나의 신앙에 타당성을 부여해 주었기 때문에 불교를 단지 하나의 예로써 제시할 뿐인 것이다. 그 밖에도 여섯 살 때부터 승려로서의 삶을 살아온 나로서는 불교에 관한 한 약간의 지식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불교를 들먹였을 뿐이다. (244)
출처 : 박근형의 티베트 사천 자료실
글쓴이 : berdl28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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