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출처 : 월간 『붓다』 2002년 3월호 (통권 제 169호)
글쓴이 : 성원 스님 (미국 위스콘신대학교 박사과정 수료)
링 린포체는 누구인가? 구룡사는 무슨 이유로 그를 초청하여 대법회를 해야 하는가? 이 점은 우리 한국 불자들에게 문제로 다가온다. 더군다나, 우리의 큰스님의 전통과 전혀 다르게, 청년 링 린포체가 왜 티벳 불교의 전통에서 그렇게 중요하게 인식되는가? 우리의 불교적 기준으로 볼 때, 티벳 불교는 너무나 생소하다. 티벳의 불교와 한국 불교는 역사적 맥락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티벳 불교의 주요한 특징인 환생의 전통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링 린포체는 도대체 누구인가? 그는 현 달라이 라마의 수석 교수사인 링 린포체의 환생이다. 여기에서, 필자는 현 링 린포체의 전생인 링 린포체를 소개하고 싶다. 고(故) 링 린포체의 완전한 이름은 제쑨 툽텐 훙톡 남겔 틴레이 팰짱포이고, 키압제 용진 링 린포체라고도 불린다. 그러나 우리는 일반적으로 그를 링 린포체라 부른다.
고 링 린포체는 라싸의 북서쪽 야푸에서 1903년 11월 6일에 태어났다. 그는 제 6대 링 린포체이다. 링 린포체는 금강 바이라바(Vajrabhairava)의 화신으로 알려지고 있다. 제 6대 링 린포체는 제 13대 달라이 라마, 그리고 네충과 가동의 신탁에 의해서 인정되었고, 일곱 살에 정식적으로 링 린포체가 되었다.
그는 유년기를 가르빠 리트로 사원에서 보냈고, 티벳 불교에 대한 기초적 지식을 그곳에서 습득했다. 1912년에 그는 라싸 부근에 있는 데풍 로셀링 승원으로 가서 그곳에서 불교 논리학, 반야 사상, 중관 사상, 아비다르마 교학, 계율을 집중적으로 배웠다. 그는 제 13대 달라이 라마로부터 1913년에 사미계를 받았고 1923년에 비구계를 받았다. 그는 1924년에 화람파 게쉬 칭호를 부여받았다. 그는 열세 살 이래 불교의 현교와 밀교의 모든 점에 대해서 32명의 대라마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그 중의 대표적인 스승은 제 13대 달라이 라마, 그의 법사인 파봉카, 데첸 닝포, 불두 린포체, 섭정(攝政) 쒳곤 시키옹 타드락 린포체, 캉사르 린포체, 초네 라마 린포체, 용진 티장 린포체이다. 그는 1936년 섭정 레팅 린포체에 의해서 규토 승원의 주지로 임명되었다.
그와 달라이 라마의 관계는 규토 승원의 주지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링 린포체는 규토 승원의 주지로 봉직하면서 현 제 14대 달라이 라마의 조교수사로 달라이 라마를 지도하였다. 그후 현 제 14대 달라이 라마가 1940년 달라이 라마에 즉위하면서 링 린포체는 차석 교수사가 되었다. 링 린포체는 1949년에 티벳 겔룩파의 제 2인자인 사르파 초제가 되었고, 곧 이어서 달라이 라마의 수석 교수사가 되었다. 그는 차석 교수사인 티장 린포체와 함께 달라이 라마를 보좌하여 불법이 티벳에서 끊임없이 전승될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중국의 티벳 강제 점유로 인해서 1959년에 그는 달라이 라마를 모시고 인도로 망명하였다. 그는 처음에는 달라이 라마와 함께 무쏘리에에서 체재하였고, 이후에는 달람살라로 옮겼다. 제 96대 겔룩파의 문장(門長)이 돌아가시자 그는 1965년 3월 6일에 겔룩파의 문장이 되었고, 인도의 부다가야의 간덴 펠게링 승원의 주지가 되었다. 링 린포체는 1983년 12월 25일에 열반에 들었고, 그는 그때까지 제 97대 겔룩파의 문장으로서, 그리고 간덴 펠게링 승원의 주지로 봉직하였다.
현 제 7대 링 린포체는 1984년 인도의 달람살라에서 태어나 1987년에 발견되었으며, 링 린포체로 인정되었다. 현 링 린포체가 우리 구룡사에 오시게 된 것이다.
그러면, 전 제 6대 링 린포체의 제자인 현 제 14대 달라이 라마는 어떤 사람인가? 현 제 14대 달라이 라마는 1935년 7월 6일 북부 티벳 암도의 탁세르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완전한 이름은 쟘펠 앙왕 롭쌍 예세 텐진 갸쵸이다. 그가 두 살 때 제 13대 달라이 라마의 환생으로 인정되어 1939년에 라싸로 옮겼으며, 1940년에 달라이 라마로 책봉되었다.
그는 포탈라 궁과 노블링카 궁에서 수석 교수사인 링 린포체와 차석 교수사인 세라 제의 저명한 불교학자 티장 린포체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내전인 불교 논리학, 중관 불교, 아비다르마 불교, 율장, 그리고 외전인 역사, 시학, 천문학 등을 배웠다. 그후에는 탄트라를 심도있게 배웠다. 달라이 라마는 이 두 명의 스승 이외에도 대학자인 쿠누 라마 텐진 겔뵅으로부터도 교육을 받았다. 그는 24살에 화람파 게쉐의 칭호를 부여받았다. 그는 10대 초반부터 영어를 열심히 배우기 시작하였고, 중국의 티벳 침략으로 인하여 16살에는 달라이 라마의 권한을 완전히 부여받았다. 그는 티벳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1954년에 중국을 방문하였다.
그는 티벳의 민중 봉기가 일어난 지 꼭 7일째 되는 날인 1959년 3월 17일에 라싸를 떠났다. 그후, 그는 인도 정부로부터 망명이 받아들여졌고, 현재는 인도 북부의 달람살라에서 티벳 망명정부를 이끌고 있다. 그들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를 따라서 약 10만 명의 티벳인이 망명을 했고, 망명자 대부분이 인도와 네팔에서 주로 살고 있다. 1959년 망명 이래 달라이 라마는 평화적 방법으로 티벳의 독립을 추구하고 있으며, 그 결과 1989년에 노벨 평화상을 수여받았다.
그는 인도의 달람살라, 부다가야, 그리고 여러 곳에서 불교의 포교와 티벳의 독립 운동을 왕성하게 펼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자주 세계를 누비며 불교의 포교와 세계의 평화를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우리는 그의 생생한 육성을 서점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그의 책의 일독을 권한다. 그의 책은 우리들에게 많은 영적 시사를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