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를 들어“개혁을 위한 문호개방기”인 1983년에서 1987년 사이에 이루어진 삼림 벌채 덕분에 동쪽 및 동남아시아의 대부분의 중요한 강들이 심대한 영향을 입었음을 그들은 인정하였다. 그런데 브라마푸트라강, 메콩강, 살윈강, 양자강과 황하와 같은 이러한 강들은 대개 티베트 고원에서 발원하고 있는 것이다. 숲이 없이지자 수백만톤의 흙이 강으로 쓸려들어갔고, 강들의 하구에 토사가 쌓였으며, 댐이나 저수지들의 기능이 상실되고 홍수와 가뭄을 증가시켰다. 방글라데쉬의 홍수와 같은“자연재해”들도 실은 그 원인이 중국 공산주의의 탐욕에 있는지도 모른다.
사실들 자체가 그동안의 사정을 잘 말해주고 있다. 동부 티베트 지역에서 중국인의 점령이 시작된 이후 68퍼센트의 삼림이 상실되었다. 어떤 여행자의 기록에 따르면, 1987년에 그가 양자강의 지류인 민계곡을 버스를 타고 올라가면서 본 것이라곤 190마일에 걸친 빽빽한“벌목차량들”뿐이었다. 티베트 고원의 높이와 규모 때문에 이러한 삼림벌채는 예를 들어 몬순을 약화시키는 것과 같은, 전지구적인 차원의 기후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의견이 있다.
거대한 인구유입이 ― 지금 티베트에는 6백만명의 티베트인들에 대하여 7백 50만명의 중국인들이 있다 ― 이 나라의 생태계에 엄청난 긴장을 주고 있다.
점령 이전에 티베트에는 도로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가장 궁벽한 지역까지 열어놓은 수천마일의 도로가 뚫려있다. 예전에 티베트의 암도지방에 속했던 변경지역 킹하이는 중국의 클론다이크(캐나다 유콘강 유역의 유명한 금광지대 - 역주)라 할 만한 곳으로 여기서 해마다 억만파운드어치의 금이 광포하고 무분별한 채광을 통해서 상실되었다. 그런가하면 북부 티베트에서 대량으로 추출된, 광범위하게 이용되는 산업용 광문인 봉사는 중소(中蘇)분열 이전에 소련에 졌던 부채를 모두 갚을 수 있게 해주었다고 한다.
다른 곳도 아니고 하필이면 티베트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은 끔찍한 아이러니이다. 여러 세개에 걸쳐 서구인들에게 ― 제임스 힐튼의 샹그리라를 기억하는가? ― 티베트는 신비와 조화의 땅, 일종의 지상의 열반이었다. 거기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서구인들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어떤 만족스러운 상태에 달한 것처럼 여겨졌다. 지나친 신비화와 헐리웃의 엉터리짓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믿음이 기본적으로는 진실을 내포하고 있었다.
이것은 분명히 다른 형태의 생명을 해(害)하지 말 것을 가르치는 불교에 크게 연유했다. 하인릿히 하러는《티베트에서 보낸 7년》속에서 티베트 수로인 라사에서 겪은 일, 즉 홍수방비용 수로를 건설하는 일의 어려움에 대하여 썼다. 공사중에 누구라도 삽에서 벌레 한마리를 발견하기만 하면 비명이 터져나왔고, 흙을 치우고 벌레를 안전한 곳에 갖다 두지 않으면 안되었다. 반세기전에 영국의 무역사절단의 우두머리였던 휴 리차드슨은 그때 사실상 경찰과 군대가 없던“통합된 전체”인 티베트 사회를 회상하고 있다.“나는 시기심, 미움, 악의, 불친절의 증거가 그곳보다 더 적은 곳을 보지 못했습니다.”라고 그는 덧붙인다. 환생에 대한 믿음, 그래서 미래를 위한 염려가 일종의 자기보호로 되어있는 것이 어떤 역할을 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자서전 '망명속의 자유' 속에서 달라이 라마는 신분을 감추고 자기 나라를 여행하다가 어느 목동과 대화를 갖게 된 경험을 적고 있다.“키가 크고 튼튼하며 마치 야크와 같은 길고 덥수룩한 머리를 한”이 남자는 중국인에 관해 아는 바도 거의 없었고, 라사에 가본 일도 없었다. 그는 얇은 흙으로부터 삶을 이끌어내는 일에 너무 바빠서 먼 도시와 그 너머 보다 넓은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을 가질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 모든 그의 소박성에도 불구하고”하고 달라이 라마는 회상한다.“나는 그가 깊은 종교적인 확신을 가지고 있고, 불법(佛法)이 이러한 오지까지 번창하고 있음을 알고 기뻤다…… 무엇보다도 나는 이사람이 전혀 교육을 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만족한 느낌으로 살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자신 물질적 안락을 조금도 가지고 있지 않지만 그의 삶이 수없이 많은 세대에 걸친 조상들에게 그랬던 것과 똑같은 것이고 또 자기의 아이들과 그들의 아이들에게도 틀림없이 인생이 계속될 것임을 확신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