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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당번고도를 가다]4회- 통천하(通天河)를 건너 옥수(玉樹)로

chomice 2008. 1. 2. 15:44

- 양자강(揚子江)을 건너서…
황하의 발원지 성숙해(星宿海)에서 신랑감인 송첸감뽀 임금을 만나 첫날밤을 치른 문성공주는 장안에서부터 신부를 배행해온 친아버지 이도종(李道宗)일행과 이별하고 낭군님을 따라 토번왕국의 수도인 라싸를 향해 남쪽방향으로 길을 재촉하였다.
그 길은 거대한 산맥을 넘고 수많은 강을 건너야하는 험로행 그 자체였다. 그 첫 번째 난관이 통천하를 가로지르는 나루터인데, 현재는 현대식 다리가 놓여져 있어서 사람과 차량의 통행에 지장이 없으나, 옛날 이곳은 <서유기(西遊記)>에서 삼장법사 일행이 거북이 등을 타고 건넸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험한 곳이었다. 그것을 상징하듯이 현재 그 나루터에는 삼강원두(三江源頭)-“황하, 양자강, 메콩강의 발원지라고 쓰인 조형물”- 이 서있고 그 아래로 거센 탁류가 흘러가고 있었다.

흔히 우리가 양자강이라고 부르는, 이 강을 중국인들은 ‘끊임없는 긴 강’이라하여 ‘창지앙(長江)’이라 부른다. 이 가람은 총 길이 1만5천리(6,380km)를 자랑하는 세계에서 3번째의 대하로 발원지인 당고라(唐古拉)산맥에서부터 처음에는 타타하(沱沱河)란 이름으로, 다음에는 통천하로, 다시 금사강(金砂江),  장강, 양자강으로 이름을 바꿔가며 흐른다.
이 ‘긴 강’은 그 사이 7백여 개의 지류를 흡수하며 대륙의 대부분(12개省)을 가로질러 상하이(上海)에 도달해 서해로 들어간다. 말하자면 크고 작은 수많은 물줄기를 넉넉한 포용력으로 모두 받아 들여 흐르는 중국대륙의 젓줄인 셈이다.

요즘 급변하는 중국을 말할 때 “황하는 문명의 아버지요 장강은 문명의 어머니”라거나 “장강은 동(東)으로 흐른다.” 라고 하여 중국의 미래를 ‘용(龍)의 기지개’로 비유하여 개혁개방의 물결이 넘실대다 못해 꿈틀대는 현대중국을 해석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사실은, 이른바 ‘장강문화’는 비단 중화민족, 즉 한족(漢族)만의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발원지에서부터 사천(四川)평야에 이르는 중류(中流)이전의 문화는 티베트문화적인 요소가 더욱 진하다는 사실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 옥수(玉樹)에서 보낸 꿈같은 세월
장안에서 라싸까지의 8천리 행로 중에서 문성공주의 행적이 가장 선명한 곳은 옥수라는 곳이다. 고산지대라 옥같이 귀한 나무가 자라는 곳이라는 뜻을 가진 이 도시는 현재도 청해성과 사천성 그리고 티베트를 잇는 교통의 요충지로 옥수티베트족자치주의 중심지이지만, 옛날부터 옛‘당번고도’상에 중요한 역참(驛站)이었다.
공주의 라싸입성이 4월 15일인 것을 감안하면 공주일행이 옥수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기에 더 이상 여행을 계속할 수 없었을 것이기에 문성공주는 이곳에서 적어도 3개월 이상을 머문 것으로 보인다.
이곳에 전해지고 있는 공주의 행적, 즉 원주민을 상대로 한 대민봉사활동은 눈부셨다. 선진문물의 교육, 직조술, 춤과 음악의 보급, 식량과 약재의 재배술 등을 현지인들에게 전수해주었다. 물론 중국문화의 우수성을 강조하기 위해 뒷날 고의적인 각색도 포함되었을 것이지만, 온통 그녀에 의해 현지의 모든 문화가 처음으로 생겼다는 식이다.
 민간에는 당시의 민요가 다음과 같이 구전되어 내려오고 있는 것을 보아도 공주의 영향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에이야 저 구불구불 길을 올라가면 참깨 꽃이 양산처럼 피어있네.
공주의 행차가 이곳을 지나가네. 찬란한 햇빛이 산을 비추네.
에이야 나의 누이여! 찬란한 햇빛이 관산을 비추네.”
문성공주가 옥수에서 베푼 많은 일중에서 현재 가장 돋보이는 활동은 중국불교의 전래이다. 그녀는 장안을 출발할 때 많은 불경과‘조오’라는 이름의 석가불상을 가지고 출발할 정도로 독실한 불자였기에, 옥수로 오는 도중에서도 틈만 나면 길가의 바위에다 불상을 새기게 했다는 것이다.
그 중 옥수 인근의 륵파구(勒巴溝)에는 현재도 수십만 개의 마니석(瑪尼石)과 불상들이 계곡 전체를 가득 메우고 있어서 그녀의 불심을 읽을 수 있게 해주고 있다. 또한 현재 문성공주 사당이라는 전해지는 사원 안에는 공주가 데리고 온 석공으로 하여금 새기게 했다는 거대한 마애불상이 완전한 형태로 전해지고 있어서 본토인들의 경배의 대상이 될 뿐만 아니라 지나가는 나그네의 발길을 잡아끄는, 수억 개의 마니석 담장으로 유명한 니나사원과 함께, 이 지방 최고의 관광명소가 되어 있다.

공주가 한철을 보낸 옥수에서의 시간들은 공주 개인적으로도 일생을 통해 가장 꿈같은 시간들이었다. 왜냐하면 과부노릇 40여년을 뺀 8년이란 짧은 결혼생활 중에서 큰 왕비인 맹비(孟妃)와 네팔출신의 부리쿠티왕비 같은 서슬 퍼런 4명의 손위시앗들 속에서 눈치를 보지 않고 오롯이 남편인 송첸감뽀와 함께 신혼을 즐길 수 있었으니까…

 

 

http://blog.naver.com/116suri?Redirect=Log&logNo=20032262428

2007/01/01 13:43

 

(강원일보 2007년 1월 5일)

출처 : 박근형의 티베트 사천 자료실
글쓴이 : berdl28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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