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오색 기원깃발 신화적 신비로움 간직
-황하의 첫 마을에서
수개월 동안 3,000여km나 되는 먼 길을 재촉하여 공주일행이 토번의 송첸감뽀 왕을 만난 곳은 황하의 발원지인 성숙해(星宿海)란 호숫가였다.
당시 신랑감이던 송첸감뽀는 역시 수개월 전에 라싸를 출발하여 `백해행관(柏海行關)’이라는 행궁(行宮)을 지어놓고 공주를 맞았다고 하는데, 이때의 광경을 당과 토번의 역사는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이곳에서 문성공주의 생부인 이도종은 딸을 사위임금에게 넘기고 당나라로 돌아갔다고 하는데, 당서에는 이 때 송첸 왕이 이도종을 `장인어른’의 예우로 대했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티베트역사서에는 그냥 예부상서라는 호송직책의 외교사절에 대한 예우차원으로만 적고 있다. 당시는 `가짜 공주’라는 사실을 몰랐다고 여겨지는 대목이다.
그러면 두 나라가 무려 7년 동안의 줄다리기 끝에 성사시킨 첫날밤은 어디에서 치러졌고, 현재 지명으로는 어디쯤일까? 하는 의문은 이번 탐사 중 가장 큰 의미가 있는 곳이기에 우리 일행은 모든 자료와 현지인들의 증언을 토대로 하여 그곳을 찾아 나섰다. 그 키워드가‘백해행관’의 흰색, 즉 티베트어로 `카르’라는 현지명을 찾는 일이었는데, 정말 그런 곳이 있었다. 그곳은 현재 청해성 마둬현(瑪多縣) 소재의 황하발원지인 어링호반(愕陵湖畔)의‘카르체’라는 사원이라는 곳이었다.
-성숙해(星宿海)의 전설
일반적으로 중국 대륙의 젓줄이며 길이 5,464km의 대 황하의 발원지일대를 성숙해라고 부르지만 실은 이는 하나의 호수의 이름이 아니고 크고 작은 많은 호수들을 통칭하여 부르는 이름으로 그 중심에 어링과 쟈링(?陵)이라는 아름다운 쌍둥이 호수가 있다.
두 호수에는 언제부터인가 슬픈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바로 성숙해를 품고 있는 곤륜산맥의 지류인 바옌카라산맥(巴顔喀拉山脈: 5,442m)의 어원에서 유래하고 있어서 이채롭다.
옛날 그곳에는 바엔랑만이라는 용감하고 힘센 목동이 살고 있었는데, 그는 춤과 노래 그리고 피리를 잘 불어서 모든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었고 새들조차 그 소리에 끌려 그 곁을 떠나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런 멋쟁이 바엔을 하늘의 옥황상제의 시녀인 카라아만 선녀가 짝사랑하게 되어 둘은 눈이 맞아 어링과 쟈링이라는 이름의 예쁜 두 딸을 낳았다. 그러나 신분의 차이를 뛰어넘는 이런 사랑은 언제나 비극으로 끝나게 마련인지, 옥황상제는 하늘장수로 하여금 카라선녀를 납치하여 변절을 강요하였다. 그러나 차라리 죽음을 택한 선녀는 설산이 되었고 바엔목동도 이루지 못할 사랑을 죽음으로 받아드려 나란히 설산으로 변해버렸다고 한다.
한편 어린 두 딸은 이웃 사람들의 보살핌으로 아름다운 여인으로 성장하여 후에 그 슬픈 사연을 알게 되어 눈물을 뿌리며 부모를 찾아 다녔다. 이런 애처로운 두 딸을 보다 못한 선녀가 꿈에 나타나 태양이 떠오르는 동쪽으로 가면서 수많은 선행을 하고 사람과 동식물에게 물을 주는 보시행을 하면 가족이 다시 만나 같이 살 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이 두 딸은 지금도 선행을 멈추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황하의 발원지를 품고 있는 바엔카라 산맥이 바로 목동과 선녀인 두 딸의 부모이고 두 딸이 흘린 눈물이 고여 어링호와 쟈링호가 되어 다시 황하로 흘러내리면서 모든 중생들에게 생명수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대 황하(黃河)는 여기서부터
우리 일행은 심해지는 고산병 적응을 위해 황하의 첫 마을에서 하루를 쉬고는 다음날 86km의 험로를 달려 드디어 역사적인 첫날밤의 장소였던 카르체사원에 도착하였다.
그곳은 수많은 불탑과 오색깃발의 펄럭임 속에 묻혀 있는 작지 않은 규모의 사원이어서 촬영할 것이 많았지만, 우리는 고산특유의 일기변화를 우려하여 우선 다시 차를 몰아 뒷산으로 오르기 시작하였다. 고산지대의 초겨울이라 길바닥에는 이미 얼음이 덥혀 있었지만 위험한 고비를 몇 번 넘기며 드디어 정상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가쁜 호흡을 가다듬고 바라보니, 그곳에는 야크뿔 모양의 검고 거대한 표지석이 세찬 바람 속에 서 있었는데, 그 안에는 `황하원두(黃河源頭)’ 즉 `황하의 발원지’ 라는 글씨가 선명하였다. 더구나 그 주위에는 수많은 오색의 기원의 깃발이 돌이 날아다닐 정도의 세찬 바람에 찢어지듯 펄럭이고 있어서 신화적인 신비스러움에 괴기스러움을 더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내려다본 광경을 어찌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있으랴마는, 반쯤 열린 하늘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태고의 햇살이 비치는, 눈부셔 차마 보기 힘든 호수를, 바라보는 필자의 감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 이유는 물론 이번 탐사의 목적달성이라는 성취감도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도 이미 양자강과 메콩강의 발원지를 답사했기에 설역고원(雪域)에서 시작하는 `3대강’의 발원지를 모두 주파한 셈이어서 더욱 그러하였다.
아! 정말, 여기서부터 대 황하가 시작된단 말인가?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애송시 이태백의 `장진주(將進酒)'가 자연적으로 흘러나왔다.
“그대 보지 못하였는가? 황하의 강물이 하늘에서 내려와 바삐 흘러 바다로 가지만, 다시는 돌아오지 못함을(君不見 黃河之水天上來 奔流到海不復廻)….”
다정 김규현(티베트문화연구소장)
(강원일보 문화면 2006-12-21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