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와 민간단체,호시탐탐 영토침범 기회 노려 |
중국잡지, 단체 추진 왕건흥 집중 조명 여론 몰이 |
이어도 분쟁이 다시 벌어질 조짐이 보이고 있다. 이번에는 중국 정부가 아니라 중국 민간단체가 반격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이어도(離於島)는 북위 32도 07분, 동경 125도 10분, 마라도 서남방 149㎞에 있다. 중국령 동도(童島)에서 247㎞, 일본 나가사키현(長崎縣) 도리시마(鳥島)에서 276㎞ 거리. 한국이 가장 가깝다. 해저산으로 봉우리 4개가 있으며, 썰물 때도 수중 4.6m에 위치, 큰 파도가 불 때만 조금씩 보인다. 그래서 제주도 어민들은 파랑도(波浪島)라고도 불렀다. 민요 이어도타령은 지금도 전해 내려온다.
이 바다 속 바위가 서구에 알려진 것은 1900년 영국 상선 소코트라가 이어도에 부딪쳐 좌초하면서부터. 이후 세계해도는 이 암초를 ‘소코트라 암초’로 기록했고, 중국은 이 이름을 음역해 소암초(蘇岩礁)로 부르기 시작했다.
해양경찰 e-포커스 |
한국정부가 95년 시공, 2003년 6월 완공한 이어도 종합해양과학기지의 모습, 이어도 기반석 위에 지은 이 기지는 높이 77m의 철제 사각구조물로 44가지 1백8개 관측장비로 기상해양관측활동을 하고 있다. 관측실험실, 회의실, 침실, 등대, 헬기이착륙장 등 시설을 갖추고 있고, 7명이 14일간 임시 거주할 수 있다. |
그러나 제주 사람들에게 이 암초는 먼 옛날부터 알려진 신비의 섬이었고. 1951년 한국산악회와 한국해군은 이 암초를 조사, 파랑도라는 이름을 붙였다. 1984년 KBS는 이 암초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방송했고, 1987년 제주지방해양수산청은 이름을 ‘이어도’로 고쳤으며, 한국해양항만청이 항해 부표를 설치했다. 2001년 1월 한국국립지리원과 중앙지명위원회가 ‘이어도’라는 이름을 확정했다.
현 중국정부가 이어도를 처음 인식한 것은 ‘약진호(躍進號)사건’. 약진호는 1962년 대련(大連)조선소가 완성한 1만5천9백톤급 원양화물선으로, 중국이 처음 만든 1만톤 이상급 화물선이었다. 중공 우전부(郵電部)가 기념우표를 만들었을 정도로 중국에게는 경사였다. 그러나 1963년 5월 2일 워싱턴·모스크바·서울 주류 언론은 이 약진호가 어뢰에 맞아 침몰했다는 기사를 실었다. 미국·소련·대만·한국정부는 자국 군함이 약진호와 접촉한 사실이 없다고 발표했다. 5월 3일 주은래(周恩來) 총리는 정확한 조사를 명했고, 결론은 소암초에 부딪쳐 침몰했다는 것이었다.
조사팀의 원인분석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선장을 포함해 선원 총 58명의 훈련과 연습이 부족했고, 둘째로 선장이 소지한 해도에 이 암초가 나와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1992년 중국해군 북해함대는 소암초 일대를 정밀 측량했다.
한국정부는 종합해양과학기지를 95년 시공, 2003년 6월 완공했다. 이어도 기반석 위에 지은 이 기지는 높이 77m의 철제 사각구조물로 44가지 1백8개 관측장비로 기상해양관측활동을 하고 있다. 관측실험실, 회의실, 침실, 등대, 헬기이착륙장 등 시설을 갖추고 있고, 7명이 14일간 임시 거주할 수 있다.
중국 국가해양국은 2005년 해양행정집법공보(海洋行政執法公報)에서 중국 해양감시기가 지난해 이어도의 한국종합해양과학기지에 대해 5차례에 걸쳐 비행기를 동원한 순항 감시 활동을 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중국정부는 9월 14일 한국이 이어도에 세운 기지는 일방적인 조치이며 어떤 법률 효력도 없다고 주장했다. 진강(秦剛)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중국이 2000년과 2002년 두 차례에 걸쳐 한국정부에 항의했으며 EEZ 중첩지역에 이런 시설을 세우고 활동하는 것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또 중국정부는 지난 9월 29일 1999년부터 3년간 조사 끝에 이어도 부근에서 새로운 암초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한국해양수산부가 이어도 동북쪽 4.5km 부근을 정밀 수색한 결과, 그곳에 정말 수중 암초가 있었다. 길이 372m, 폭 169m로 축구장 7배 넓이. 암초에서 가장 얕은 곳이 수심 24.6m로 이어도의 4∼5m보다 상당히 깊다.
중국은 이 암초에 ‘딩옌’이란 이름을 붙였고, 한국정부는 우리식 이름을 붙이기로 결정했다. 권석창 해양수산부 해양개발과장은 “국내외적으로 지명 표준화를 이루는 것”이라며 “향후 배타적 경제수역 획정에서 보이지 않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콩에서 발행하는 시사주간지 아주주간(亞洲週刊) 2006년 12월 3일자는 24쪽부터 30쪽까지 이어도 문제를 다뤘다. 현 중국 외교부 입장은 다음과 같다.
“중국은 국제법을 준수, 대화와 협상으로 풀 것이다. 소암초는 바다 밑에 있는 암초다. 중국과 한국은 영토분쟁이 없다. 중국정부는 한국정부와 여러 차례 교섭했으며, 한국정부는 소암초가 EEZ 획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밝혔다. 우리는 분명한 입장을 갖고 있다. 한국측의 일방적인 행동은 어떤 법적 효력도 없다.”
아울러 이 잡지는 한 인물을 집중 조명하고 있다. 왕건흥(王建興), 74년생, 97년 천진(天津) 남개(南開)대학을 졸업하기 전 93년 국비장학생으로 한국 고려대학교에서 1년 동안 공부했다. 일본에서도 공부했으며, 북경대학교 석사과정을 마친 뒤, 현재 중국사회과학원 서아시아·아프리카연구소(西亞非洲硏究所)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이 사람은 중화보위소암초협회(中華保衛蘇岩礁協會)를 추진하고 있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
△소암초 문제에 관심을 가진 동기는?
-2005년 8월 15일 청도(靑島) 기린호텔(麒麟大酒店)에서 대만 중산(中山)대학 정치학 박사를 마친 이씨 성을 가진 한국친구를 만나 이야기하며 같이 KBS 광복특집 프로그램을 봤다. 그 때 깜짝 놀랐다. 기자 한 명이 백두산 천지에 있고, 다른 한 명은 망망대해 어느 인공건축물에 있었다. 저기가 어디냐고 물었더니 “한국이 새로 개발한 최남단”이라는 것이다. 한국 최남단은 ‘마라도(馬羅島)’다. 그곳에 비석이 있고 한글도 아닌 한자로 ‘대한민국최남단’이라고 스스로 밝히고 있다. 내가 말했다. “저건 틀렸다. 저곳은 중국전통해역이다. 섬도 없다.”
△중국이 소암초에 주권을 갖는 이유는?
-중국 연안 어민들은 수천년 전부터 이 암초를 알고 있었다. 산해경(山海經)에도 신주(神州)와 동해봉래(東海蓬萊) 사이에 바다 밑 선산(仙山)이 있다는 기록이 있다. 수당(隋唐)이래 고려·일본 조공사신과 유학생들, 우리나라 인사들도 이 암초를 봤으며, 역사기록을 봐도 이 암초가 중국에 속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민국시대 우리나라 지질학자들이 이 암초가 중국 대륙판에 속한다는 것을 밝혀냈으며, 위치 자체가 2백 해리 중국 영해에 속한다. 다른 나라가 이곳에 인공구조물을 세우는 것은 중국 영토 침범이다.
△한국이 소암초를 점령한 의도가 뭔가?
-거시와 미시로 볼 수 있다. 거시적으로 보면, 한반도는 좁다. 삼면이 바다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북진정신(北拓精神)이 있다. 일제시대 많은 한국인들이 만주로 왔고, 한국전쟁 직후 북한은 백두산 천지와 압록강 하구 신도(薪島)를 요구했다. 이후 한국은 동쪽으로 눈을 돌려 일본과 독도분쟁을 일으켰다. 한국은 ‘먼저 점령하는 자가 임자다’라는 원칙을 이용했고, 실제로 성공했다. 지금은 남쪽으로 눈을 돌려 강력하고 신속하게 행동한 것이다. 미시적으로 보면, 한국은 소암초를 인공섬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 국제해양법 근거로 삼겠다는 거다. 그러면 우리나라 동해에서 프랑스만한 바다영토가 한국 것이 된다. 목적은 어업자원과 석유를 뺏겠다는 거다.
△중국정부는 왜 소암초에 대해 공개적으로는 낮은 어조를 유지한다고 보는가?
-중국정부는 2006년 8월까지 소암초에 대해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나는 4가지 원인이 있다고 본다. 첫째, 중국은 일본과 조어도(釣魚島; 일본명 ‘센카쿠’)분쟁이 있다. 양쪽으로 싸우고 싶지 않은 거다. 둘째, 한국은 동북아 문제에서 중국과 일종의 묵계를 유지하고 있다. 중국은 이것을 약화시키고 싶어 하지 않는다. 셋째, 북경올림픽에 한국선수단이 참가하지 않으면 이것도 문제다. 넷째, 한국은 준비하고 도발했다. 일본과 오랫동안 독도분쟁을 벌인 경험이 있다. 게다가 한국은 5천만명이 쉽게 단결하는 민족성을 갖고 있고, 세계 10위 경제강국이며, 저들은 중국의 약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중화보위소암초협회(中華保衛蘇岩礁協會) 결성 후 어떤 일을 할 것인가?
-여러 방법으로 인민들에게 알리겠다. 중국 주권 소암초에 한국에게 점령당했다. 우선 협회 사이트를 만들 것이고, 한국대사관과 영사관에 항의서한을 보낼 것이다. 이미 모인 회원이 3백명이다. 모금활동도 벌일 것이고 ‘중국영토 소암초(中國領土蘇岩)’를 새긴 동판이나 비석을 기회를 보아 소암초에 세울 것이다. 물론 배도 사야 한다. 그래서 비석과 중국국기를 꽂을 것이다. 중국정부는 한국정부에 불법건축물 철거를 강력하게 요구해야 한다.
왕건흥은 이어도가 중국 대륙판에 속한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국제사회 일반 기준인 중간선을 적용하면 중국령 동도는 한국 마라도보다 1백㎞ 가까이 멀다. 또 동도는 마라도와 달리 무인 암석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동도는 중국의 배타적경제수역이 될 수 없다. 그만큼 중국으로부터 더 멀어지고, 이어도는 당연히 한국 경제수역에 속한다.
문제는 최악의 상황이다. 이 협회가 비석과 중국국기를 이어도에 꽂는 날, 한중관계는 심각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한국 군함이 출동할 때 중국이 맞대응 한다면, 이것은 그야말로 심각한 국면이다.
이어도는 아직 수면 아래 있다.
박근형 기자 sooksook28@naver.com
시민의신문 2006년 12월 11일 제679호 제18면
<참고문헌>
亞洲週刊 12월 13일 24쪽~30쪽
업코리아 2006년 11월 28일 10:32 중국, ‘이어도공정’ 추진하나……시민단체 결성 준비 중
YTN 2006년 10월 27일 2:22 “이어도 암초에 우리이름 붙인다”
YTN 2006년 9월 14일 11:53 이어도와 종합해양과학기지
연합뉴스 보도자료 2006년 11월 29일 15:25 [독도본부] <논평> 이어도에 대한 침탈행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http://www.ijeju.net/ http://ijeju.net/Culture/Cul_09/C_06/
http://blog.naver.com/ararikim?Redirect=Log&logNo=70008128809